[깊이읽기] 인간은 달린다, 고로 인간은 존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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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는 왜 달리는가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이끼북스, 342쪽, 1만2000원

인간은 왜 달리는가. 사람들은 왜 이 단순하고 우아하면서도 원시적인 스포츠에 매료되는가.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에 따르면 "수백만년 동안 인간이 일차적으로 선택한 운동이 달리기며, 운동은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는 "속도와 지구력 사이의 긴장이라는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달리기뿐이다. 400m 결승선을 앞두고 곡선 주로를 내달리는 육상선수 리 에번스를 지켜보는 것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일도 드물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열정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저자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마라토너'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유명한 장거리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그는 1981년 41세의 나이로 전미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고 6시간 38분 21초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쓰여진 책은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과 경주의 실제 경험들을 기록한 것이다.

생물학자 마라토너의 저작답게 책은 인간과 동물의 달리기 양축을 오간다. 저자는 뛰어난 지구력과 속도로 잘 달리는 동물들을 관찰했고 그 특질들을 자신의 달리기 훈련에 반영했다. 뛰어난 수분조절능력을 가진 낙타와 영양, 도요새, 박각시나방, 예수뱀, 도마뱀 등이다. 과학적 조사와 철학적 성찰에 근거한 이 책은 잘 달리는 동물들의 생리학을 쉽게 풀어쓴 박물지이면서, '왜 달리는가'를 묻는 진지한 마라토너들을 위한 교양지침서이기도 하다. 책은 달리기가 인간 종과 맺는 관계, 인류와 동물의 유사성, 인간 진화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들로 가지를 뻗어간다.

이후 100마일(160km), 24시간 연속 달리기에 거푸 도전한 저자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커다란 화두를 품고 달린다"고 말했다. 지평선을 등지고 서 있는 영양의 신선한 모습에 자극받아 장거리 마라톤에 나섰다는 그는 "나의 꿈은 영양을 쫓는 것이다. 영양을 쫓는 까닭은, 영양을 쫓는 꿈이 없는 인간은 애완용 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는 애완용 개보다 늑대에 가깝다"고 썼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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