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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서 찾아와 ‘즉석 리크루팅’ 하기도” 암호화폐 공부하는 대학생들…‘열공’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암호화폐 열풍 속 뜬소문만 믿고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이들과 달리 암호화폐를 ‘열공’하고자 모인 학생들이 있다고 해 11일 그들을 찾았다. 국내 최초 대학생 암호화폐 연구·분석 연합동아리 ‘크립토펙터’다. 지난해 8월 10여 명 남짓의 서울대·성균관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이 동아리는 현재 수도권 11개 대학의 학생들이 참여해 회원 수가 25명으로 늘었다. 동아리엔 컴퓨터 관련 전공자 외에 예술대, 의대, 사회과학대 등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다.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동은 크립토펙터 부회장(왼쪽)과 어경훈 크립토펙터 회장. 황병준 인턴기자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동은 크립토펙터 부회장(왼쪽)과 어경훈 크립토펙터 회장. 황병준 인턴기자

‘이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활동에 어려움은 없을까’ ‘기업에서 먼저 채용 제안도 해온다던데’ ‘정부 정책에 대한 시각은 어떨까’ 등 몇 가지 궁금증을 품고 이날 강남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크립토펙터 어경훈(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3년) 회장과 김동은(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4년) 부회장을 만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둘을 따라 팀별 발표 현장에도 가봤다. 다음은 어경훈 회장(어)·김동은 부회장(김)과의 인터뷰.

기업서 찾아와 ‘즉석 리크루팅’을 하기도 한다고. 
김: 동아리 창립멤버였던 친구가 현재 외국계 블록체인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어요. 즉석 리크루팅을 거쳐 인턴 생활을 하다가 정규직으로 채용된 사례죠. 지금까지 4명의 회원이 인턴이나 정규직으로 채용돼 경력을 쌓았어요. 주로 블록체인, 벤처캐피털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우리를 직접 찾아와 채용 제안을 합니다. 기업의 암호화폐 분야 인재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 매주 새로운 팀을 구성해 스터디 모임과 팀별 발표를 진행해요. 현재는 암호화폐 채굴과 코인 개발, 투자 기법이라는 3가지 커리큘럼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음 3기부터는 커리큘럼에 블록체인 기술 및 응용 분야를 추가로 넣을 계획이에요. 투자 기법도 좋지만, 핵심 기술을 더 심도 있게 이해하자는 취지죠.

김: 팀별 발표는 스터디에서 공부한 내용을 전체 회원들과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요즘은 일요일마다 스터디 룸을 빌려 진행하고 있어요. 학기 중에는 대학 강의실을 빌려 매주 월요일에 진행해요.

정기적인 지출이 있을 것 같은데, 활동비는 어떻게 충당하나요?
어: 국내 유명 대기업에서 활동비를 지원해주고 있어요. 오히려 돈이 남는 터라 현명하게 쓸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팀별 발표에서 팀 간에 경쟁을 붙여 이긴 쪽에 상금을 주기도 해요. 스터디 룸 대여비용, 뒤풀이 회식비용 등은 모두 지원받은 활동비로 충당하고 있죠.

기업 이름과 지원금 액수를 물었으나 계약 관계상 밝힐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김: 옆 나라 중국에선 대학생들의 암호화폐 연구가 굉장히 활발해요. 직접 암호화폐를 만들어서 출시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 사이에선 연구 분위기가 거의 전무해요. 투기 열풍만 거센데, 주변에 관련 정보를 얻을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암호화폐를 공부해 남들에게 알리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동아리 이름인 크립토펙터에 그런 의미를 담았어요. ‘암호화폐의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활동 내용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관련 우리 정부의 정책은 규제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어: 투기 광풍을 막자는 정부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정부가 암호화폐의 부정적인 면만 보는 것 같아 아쉬워요. 무분별한 투기는 제한하되 암호화폐·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저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 암호화폐·블록체인 열풍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인재 육성 기회라고 생각해요. 돈이 모이는 곳에 인재가 있는 것 아닐까요. 민간에서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정부는 일자리 관련해서 이 기회를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크립토펙터 회원이 ‘프라이버시 코인’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황병준 인턴기자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크립토펙터 회원이 ‘프라이버시 코인’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황병준 인턴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이동한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 “이번 저희 팀 발표는 여러 명이 나눠서 진행할 거예요. 블록체인처럼 ‘탈중앙집권화’했습니다.” 앉아있던 20여 명의 회원들 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프라이버시 코인’은 비트코인과 달리 거래 내역 추적이 매우 어렵다는 게 특징이죠. 모네로가 대표적이에요.” 발표를 듣던 한 회원이 손을 들어 질문하자 촬영 장비들이 주위로 몰렸다.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나온 한 공중파 방송사의 다큐멘터리팀이 현장 열기를 더했다.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방송사 다큐멘터리팀이 크립토펙터의 팀별 발표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황병준 인턴기자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방송사 다큐멘터리팀이 크립토펙터의 팀별 발표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황병준 인턴기자

이날 팀별 발표는 4개 팀이 각각 준비한 ‘카이버 네트워크(Kyber Network)’ ‘블록체인의 철학’ ‘프라이버시 코인(Privacy coin)’ ‘암호화폐 시장이 붕괴되지 않을 조건’이라는 주제 순으로 구성됐다. 한 팀당 질의응답 시간을 포함해 30분이 주어졌다. 앞선 두 팀의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휴식 시간. 두 번째 발표에서 제기된 카이버 네트워크 관련 논쟁거리를 두고 7명의 회원이 모여 “암호화 화폐가 발전하는데 거래소가 꼭 필요하냐”며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회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 황병준 인턴기자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회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 황병준 인턴기자

이들이 주말에도 ‘열공모드’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마지막 팀별 발표 진행을 맡았던 이성묵(서강대 경영학과 4년) 회원은 “처음엔 투자 목적으로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차츰 알아가다 보니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투자자가 살아남지 못할 영역이더라”고 말했다. 앞선 ‘탈중앙집권화’ 발표자 중 한 명이었던 김태범(서울대 약대 4년) 회원은 “기존에도 투자 관련 동아리를 했지만,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 기회가 필요하다고 느껴 크립토펙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크립토펙터 회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황병준 인턴기자

11일 강남역 인근의 한 스터디룸에서 크립토펙터 회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황병준 인턴기자

이날 모임엔 한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가 참관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4개 팀의 발표가 모두 끝난 뒤 스터디룸 앞으로 걸어나가 “회원분들의 대학과 전공 구성이 매우 다양해 놀랐다”며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 분석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며 “기존의 연구들을 리스트업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아직 연구되지 않은 영역에도 먼저 도전해보길 바란다”고 이번 발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황병준 인턴기자 hwang.byeongj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