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교단에서 쓰러진 남정국교 이복상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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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선생님, 가지 마세요.』 『선생님, 이젠 필기를 열심히 할께요. 제발 가지 마세요.』
「억척여교사」를 태운 영구차가 교문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돌리자 영결식 내내 울먹거리던 어린 제자 8백여명이 끝내는 대열을 흩뜨리고 영구차로 달려들며 제각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9시30분 서울 원효로2가 남정국민학교 운동장. 이틀 전인 12일 오전 11시50분 4교시 수업도중 교단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진 이 학교 이복상교사(37·여)의 영결식장.
이교사는 이날 자신이 담임하는 4학년 6반의 3교시 사회생활 수업이 끝날 무렵 45명의 학생 중 10여명이 칠판에 적어놓은 학습요점을 제대로 공책에 옮겨 적지 않은 것을 발견, 호되게 꾸짖었다.
평소 책임감이 지나칠이 만큼 강해 동료교사들 사이에 「억척」으로 불려졌던 이교사는 10여분간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4교시가 시작된 오전 11시40분까지 반 어린이들에게 『지금 필기를 게을리 하면 다음 복습 때는 물론 여러분의 성실한 생활 전체를 금가게 할 수도 있다』고 타이른 뒤 4교시 산수시간 시작종이 울리자 수업을 10여분 미룬 채 밀린 필기를 마저 하도록 시켰다.
이교사는 이어 학생들이 필기하는 모습을 잠시 둘러보다 『머리가 아프다』며 2층 교실 창가 쪽 담임자리에 앉으려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의자와 함께 그대로 교실바닥에 나뒹굴었다.
『우리 선생님이 쓰러지셨다』는 아이들의 울부짖음에 황급히 달려갔던 옆 4학년 7반의 유원근 교사(48·학년주임)가 학교 앞 원호의원을 거쳐 중앙대부속 용산병원으로 이교사를 옮겼을 때는 이미 숨이 끊긴 뒤였다.
경찰이 추정한 이교사의 사인은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
충남 온양여중을 1등으로 마친 뒤 넉넉지 못한 가정사정으로 서울여상에 진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 72년 덕성여대 야간부를 졸업,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교사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교사.
지난 73년 이교사와 중매결혼, 슬하에 1남2녀를 둔 부군 이상권교수(43·동우전문대 세무회계과)는 『만학이던 내가 지난해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의 내조는 물론이고 아이들 뒷바라지, 학교수업 등 「1인3역」을 책임감과 열성으로 도맡아온 아내였다』며 애통해 했다.
스승의 날 선생님을 위해 용돈을 아껴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철부지들이 교탁 위에 수북이 쌓아놓은 하얀 국화꽃 송이송이에는 어린이를 위해 몸바친 여선생님에 대한 개구장이들의 그리움이 배어있었다. <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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