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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가 일상화되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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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머는 기쁨이 아니라 언제나 슬픔에서 나온다. 따라서 천국에는 유머가 없는 셈이다."

물질문명을 혐오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재담이 성공하고 못하고는 듣는 사람 귀에 달렸지 말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사람을 웃기는 방법과 소재는 문화권에 따라 가지각색일 수밖에 없다. 정서적 토양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시사풍자다. 이것은 시대적 상황과 현실적 사물이나 사건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확대하는 방법이다. 이를 훈련하기 위해선 만화부터 성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색깔의 신문을 읽는 시사 감각이 필수적이다. 신문 읽기에 집중하다 보면 마른하늘에 청천벽력같이 아이디어가 뇌리에 번쩍하는 때가 있다. 이것을 잽싸게 포착하는 것은 말이 쉽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허공에서 무지개 잡듯 숨바꼭질하는 것이 이 분야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불행히도 이런 행운은 정기적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책상머리에서 골똘히 생각한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보행 중일 때, 또는 종이나 연필이 없는 경우에 아이디어가 떠올라 애를 먹이기 일쑤다. 여의치 않을 땐 스트레스만 쌓인다.

'코미디의 본질은 풍자' '유머의 핵심은 용기'라는 '익살철학'을 갖고 있던 김형곤이 시신을 기증하고 이승을 돌연히 떴다. 그는 사회 지도층의 협량(狹量) 때문에 코미디 프로에서 풍자가 사라진 점을 아쉬워했다.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듯한 말장난.몸장난 등 유치한 코미디가 횡행하는 것도 그에겐 못마땅했던 것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의 중견기자 모임인 '석쇠(gridiron)클럽' 연례 만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체니 부통령을 '사냥감'으로 삼아 좌중을 크게 웃긴 적이 있다. 올해 다섯 번째로 이 만찬에 참가한 부시 대통령은 정권의 '약점'도 숨기지 않았다. '그슬되 태우지 않는다'는 표어처럼 어떤 대상이든 인신공격은 금물이라는 이 클럽의 자율성도 돋보인다. 이것은 '진정한 리더십이 유머에서 출발한다'는 말과 같이 전통적으로 지도자 덕목 중 유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얼마 전 체니 부통령의 엽총 오발사고 때 코미디언 데이비드 레터맨이 "대량살상무기를 찾았다. 바로 딕 체니"라고 하자 제이 레노는 "워싱턴에 눈이 많이 오니깐 그 뚱보를 북극곰인 줄 알았나 보죠"라고 맞받은 일이 있었다.

이같이 유머가 일상화되려면 그 근본은 마음의 여유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신윤복의 풍속도에서 보듯 한국인의 유머감각은 뿌리가 원래 깊다. 다만 그 후에 각박함과 궁핍, 산업사회의 쫓김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된 것뿐이다. 다시 우리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유머감각을 끌어내 기쁨과 웃음을 주고받아야 한다.

집안의 쌀독에서 인심이 나듯 마음의 여유에서 유머가 난다고 본다면 '울지 못해 웃는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는 등의 부정적 한국 속담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한나라당 대변인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과 관련해 국민에게 유머를 선사한다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는데, 유머는 이렇듯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코드나 주파수가 맞아야 하고 국민정서의 시기적 흐름을 무시했다간 큰코다치기도 한다. 유머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마음의 쌍방통행이다. 주고받는 유머가 진짜 유머다. 유머의 토양은 이런 관계에서만 성숙하며 그런 유머를 지향해 한발 한발 나가야 한다.

유한태 숙명여대 디자인학부 교수 형태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