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화계 ‘미투’가 드러낸 문화 권력의 민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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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고 나면 새로운 ‘미투(#MeToo)’ 폭로가 나오고 있다. 22일에는 개봉 중인 한 영화감독의 성희롱 폭로가 나왔다. 연이은 ‘문화계 미투’가 드러내는 문화 권력의 민낯은 추악하다. 각 분야에서 존경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화 권력이 돼 온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죄의식 없이 성폭력을 일삼았고, 권력의 주변인들은 방조했다. 침묵의 카르텔이다.

들끓는 여론과 함께 각계의 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연출가 이윤택, 인간문화재 하용부, 영화배우 조민기씨 등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도 대책 마련을 공언했다. 22일에는 국내 가장 큰 작가 단체인 작가회의가 고은·이윤택 두 회원에 대한 제명 등 징계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한 달째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한 문화계 인사는 “2차 피해 등과 관련해 소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막막하다. 도대체 여가부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진보 성향의 여성단체연합은 21일 ‘성범죄자 이윤택을 처벌하라’는 성명을 냈지만 서지현 검사 폭로 때 다음 날 즉각 성명을 냈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늦은 대응이라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기도 했다.

미투 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유명인 몇 사람의 추락을 넘어 문화예술계, 나아가 한국 사회의 체질 변화로 이어지는 데 있다. 문화계 성폭력이 단지 일부 인사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가부장적 구조의 산물임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가부가 지금 부처별로 마련 중인 정책과 대안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도 있다. 차제에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조직 문화를 흔들지 않고서는 또 다른 미투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