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카 北 만날 계획없다" 했지만 "조우 대비 최대한 압박정책 숙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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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만나자면 만나겠다”“북한이 원하면 대화하겠다”고 북ㆍ미 접촉 가능성을 개방한 진짜 의도를 놓고 혼란이 커지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평창 개막식에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귀국한 지 열흘 후 “10일 청와대 비밀 회동을 하기로 했으나 북한이 회동 두 시간 전 취소해 무산됐다”고 뒤늦게 공개하면서다.

NYT "백악관, 이방카 북측 조우 가능성은 배제 안 해" #NSC "北 조건없는 만남은 '타협 없다' 메시지 전달,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없인 협상도 없다'고 결정"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21일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과 회동이 무산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의 북ㆍ미간 접촉에 대한 결정 내용을 공개했다.
백악관 NSC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우리의 타협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또 ‘우리는 북한이 만나자고 요청하면 만나지만, 그들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할 때까지 우리는 입장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며,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북ㆍ미 접촉 원칙을 정한 것은 지난 2일 집무실에서 방한하는 펜스 부통령,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이 모인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전화로 연결한 회의에서였다.
북한이 만나자고 하면 만나지만 그 자리는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보이기 전까지 최대한 압박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나간다는 의미다.

당초 펜스 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조건없는 대화’ 가능성을 시사해 비핵화 본협상 이전 서로의 의중을 탐색하는 예비 대화를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미국의 의도는 북한과 직접 대면해 비핵화를 압박하겠다는 차원이었던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은 23일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24~25일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고 폐막식에 참석한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은 23일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24~25일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고 폐막식에 참석한다.[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리는 이날 별도 브리핑에서 평창올림픽 폐막식 미국 대표단장으로 23일 방한하는 “장녀 이방카는 북한 관리들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펜스 부통령처럼 북한 대표단과 또 다른 회동을 시도하거나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노(No)”라고 한마디로 자르면서다.
이 관리는 “이방카의 방한 목적은 미국 선수단을 격려하고 한ㆍ미 동맹을 재확인하며 한국의 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축하하러 가는 것”이라며 “이방카뿐 아니라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을 포함한) 대표단 전원이 여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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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일단 이방카의 북한과 접촉 가능성은 배제한 것은 개막식 때 “펜스 부통령과 만나고 싶다”고 먼저 회동을 제안해놓고 막판에 뒤집은 북한에 대한 불만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방카의 방한은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 방문과 탈북자 면담으로 긴장을 조성했던 것과 달리 상당히 부드러운 방문이 될 것으로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미 고위 관리도 "이번엔 탈북자와 면담은 없다"면서 "올림픽을 관람하러온 한국 국민들과 직접 대면 접촉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펜스 부통령이 '북한의 이방카'로 불린 김여정 부부장과 개막식 미디어 전쟁에선 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던 만큼 진짜 이방카가 폐막식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설욕한다는 심산이다.

NYT에 따르면 백악관의 한 관리는 "이방카는 문재인 대통령과 최대한 압박 정책을 토론할 완전한 준비가 돼 있다"며 "한국 언론이나 어떤 북한 관리들과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이를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과 폐막식장을 포함한 현장에서 만날 가능성까지 배제하진 않은 것이다. 이방카의 방한에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국을 전담하는 앨리슨 후커와 새러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동행하는 것도 북한과 조우 가능성을 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전 국방부 부차관보가 21일 워싱턴 특파원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TV]

에이브러햄 덴마크 전 국방부 부차관보가 21일 워싱턴 특파원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TV]

덴마크 전 부차관보 "올림픽 휴전 기회 못살리면 충돌 불가피" 

오바마 정부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출신인 에이브러햄 덴마크 윌슨센터 아시아 국장은 기자와 만나 “펜스 부통령이 비밀 회동 무산을 뒤늦게 공개한 건 북한 대표단을 눈앞에 두고도 대화 기회를 놓친 걸 만회하려는 차원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거기 있을 때 대화하지 않고는 돌아와서 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고 한 데 이어 비밀 회동 무산을 공개한 건 혼란스러우며 대화 기회가 무산돼 개인적으로 좌절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방카는 백악관 선임 고문이긴 하지만 경험이 없어 아버지를 대신해 북한과 접촉하는 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덴마크 국장은 또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 발언에선 제한적 군사옵션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북한이 신뢰할만한 핵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추면 이미 늦었다며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북ㆍ미 양측이 올림픽 휴전을 외교적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면 정면 충돌로 가는 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이 시험발사 중단이나 호전적 도발을 계속 중단하는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올림픽 이후 긴장 완화를 위해 한ㆍ미 합동훈련을 취소할 수는 없지만, 준비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장애인올림픽 끝날 때까지 앞으로 수 주 동안 북ㆍ미가 휴전을 계속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면 북한이 도발 행위를 하거나 우리가 도발을 자극하는 언행으로 다시 충돌 경로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 국장은 “안보 위기 상황에서 동맹국에 대사도 없이 경제적 압박까지 가하는 건 전략적 실수”라고도 말했다. 그는 “양국 모두 안보와 통상 이슈는 분리해야 한다”며 “무역 협상을 자칫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한 도구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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