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광고 공사 제기해 대응 난처|담배 협상 땐 철야…체력대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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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예상대로 이번 서울에서 열린 한미 무역 실무회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 양측의 입장이 노골적으로 대립해 시종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담배 협상의 경우 연이어 밤샘도 불사했는가 하면 포도주·광고시장 등을 놓고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을 정도로 팽팽히 맞섰다.
사실상 결렬로 끝나버린 광고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측이『한국 측이 5년 전부터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한다』고 언성을 높이자 우리측은『국내 광고시장의 역사가 8년 밖에 안 되는데 미국 회사들한테 한국 광고시장을 통째로 내주라는 이야기냐』고 반박.
그러나 방송광고 공사 문제를 들고나올 때는 사실 우리측에서 볼 때도 적지않은 문제가 있어 대응하기에 난처했다고.
포도주 문제는 이미 301조에 제소되어 있듯이 회의 벽두부터 수석대표「앨가이어」가 으름장. 그는 개막 스피치에서『한국이 말뿐인 수입개방 정책을 쓰면서 뒤로는 각종 규제를 일삼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포도주』라고 포문을 열면서 쿼타제를 즉각 철폐하라고 촉구.
농산물을 가지고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 측은『같이 앉아서 이야기라도 하자는데 그것마저 한국 정부는 거부해왔다』고 불만을 표시하면서 다소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수석대표「앨가이어」는 지난 4일 아침 한국기자들에 대한 배경 설명에서『한국의 정치적 상황 변화나 산업구조 정책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므로 농업 문제에 있어서도 서로 의논 껏 하자는 것』이라며 다분히 외교적인 제스처를 구사하기도.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 대표들의 태도도 종래보다 한결 정면 대결로 돌아섰고 회담 진행내용도 그때그때 소상히 기자들에게 브리핑.
황두연 우리측 수석 대표가 틈틈이 기자실에 내려와 브리핑하느라 미처 보고를 못 받은 상공 장관은 신문을 보고서야 회담 내용을 알게될 정도로 국민들에게 쉬쉬하던 종래 협상태도와는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미간 담배 협상은 6일까지 회담기간이 연장되면서 4일에는 밤을 꼬박 새우는 일까지 벌어져 양측의 체력 대결장 같은 양상을 보였다.
특히 4일 밤에는 오후 9시30분부터 시작된 회의가 5일 오전 7시30분까지 10시간을 끄는 마라톤 회의를 전개, 양측이 모두 기진맥진한 모습들.
회의가 길어지자 양측은 빵·우유·비스킷 등을 먹어가며 회의를 계속했는데 결국 이 날의 철야회의에서 최대의 난제였던 담배 소비세의 세액을 3백60원으로 한다는데 합의.
이번 담배 회담에서 눈길을 끈 것은 미국 측 대표단에 여성 대표가 많았다는 점. 한국 측 대표단이 7명 전원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남성이었던데 비해 미국 측은「크리스토프」수석 대표를 비롯, 7명중 5명이 여성이고 남성은 2명뿐. <신성순·이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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