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마찰 큰 고비 넘긴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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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간 뜨거운 열기속에서 현재 걸려있는 통상문제를 모두 다룬 한미 무역 실무회담의 특징은 미국 측의 올 코트 프레싱에 대해 한국 측이 선방, 담배·포도주 등 주요 부문에서 우리측 주장을 관철시키며 회담을 타결로 이끈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측이 한국의 정치여건 변화를 의식, 사태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타결을 서두른 점과 한국 측의 어려운 입장에 이해를 보인 점, 그리고 무엇보다 미 의회의 통상법안 통과와 오는 11월로 임박한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행정부주도의 통상 협상에서 실적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는 내부사정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우리측으로서도 미국이 301조 발동이라는 칼날을 목에 대고 있는 상황에서 가급적 타결을 유도, 흉한 꼴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우리측 주장이 상당히 관철됐다 해도 우리가 내세운 주장에서는 크게 후회한 내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담배만 해도 이번에 타결된 협상 내용대로라면 우리 나라의 전매 제도는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국산 담배 생산 및 정부지정의 소매상만이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주요 현안 문제에 대해 타결을 봄으로써 한미간 통상마찰의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항목별 협상 결과를 정리해 본다.

<담배>
미국은 한국시장에서 수출·판매·가격 결정의 자유를 획득했다.
다만 한국 측 주장대로 3백60원의 담배 소비세(내년1월1일부터)나 재정 부담금(금년 중) 을 부담하고 지정 소매상을 거쳐야만 판매할 수 있으며 광고를 할 때 신문·TV·청소년 및 여성 상대의 잡지 등에는 광고를 할 수 없는 제한을 받는데 그쳤다.
판매 가격은 잠정 기간 중에는 전매 공사가 고시하고 법 개정 후에는 정부에 신고하게 돼있으나 신고하면 그대로 인정해 주게 돼있어 사실상 완전 자유화 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한국시장 잠식을 위해 덤핑하는 경우에는 반 덤핑 관세를 물린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포도주>
이미 미국 업계가 301조에 제소한 터라 미국 측이 이번 회담 벽두부터 으름장을 놓아왔던 품목이다. 수입 쿼타를 즉각 철폐하라는 요구에 철폐시기를 1년(1990년) 앞당겨 주는 것으로 버텼고 50%로 내리라는 관세 인하 요구에는 80%를 주장하다가 70%로 절충, 합의했다.
또 일체의 테스트는 미국에서 한 것으로 대체, 생략해 달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했고 수입상의 추가면허는 들어주었다.
결국 미국 측의 요구를 충족은 못 시켜도 상당한 성의표시를 한 셈인데 이 정도로 현재 제소되어 있는 301조 발동이 취하될는지가 주목거리다.

<광고>
회담 결과 미국 측이 가장 불만을 심하게 털어놓았을 정도로 광고시장 개방 협상은 아무런 의견 접근을 보지 못했다. 지사 및 자회사 설치허용을 요구했으나 우리측은「불가」입장을 고수했고, 49%이하로 제한되어 있는 합작회사 지분제한과 방송광고 공사 제한 규정 철폐 역시 원칙적으로 어려우며 금년 말에 가서 협의에는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 측은 협의시기라도 6월로 앞당길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막판에는 301조 발동의 불가피성을 시사했다.

<농산물>
미국 측이 오렌지와 포도의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우리측도 이것만은 어떤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맞섰다. 오렌지의 경우 그 대신 오렌지 농축액의 수입물량을 늘려주는 선까지만 양보했다. 냉동 감자 등 4개 품목의 개방은 당초 개방스케줄에 포함되어 있던 것을 앞당겨 준 것.
이밖에도 미국 측은 알말파의 수입을 즉각 트고 콩·옥수수종자 개방을 비롯해 54개 농산물의 관세 인하를 요구해 왔으나 우리측은 시기상조라고 맞섰다.

<미 시판 물질특허>
미국 측이 제시한 수정안을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조건을 달아 유보시켰다. 92년7월부터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것만 보호해달라고 했으나 그「상품화 가능성」 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 측은 상품화를 위해 노력중인 것도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으나 그런 모호한 기준은 곤란하다고 거부, 다시 별도의 절충을 벌이기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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