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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떠나 신나게" 꼬마 베켄바워들 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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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프랑크푸르트 클럽 산하 여자 유소년팀 소속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다혜양(13·가운데)이 13~15세 남자팀(마카비)의 방과 후 훈련에 참가해 남자아이들과 축구시합을 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박종근 기자

6월 24일 한국과 스위스의 독일월드컵 조별 예선 최종전이 열릴 하노버. 이곳을 연고로 하는 분데스리가 구단 하노버 96 산하 유소년 클럽 훈련장을 찾았다.

잘 정비된 잔디구장 한쪽에서 '아장아장 뛰어다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아이들이 주황색과 연두색 조끼를 입고 6대6 미니게임을 하고 있다. 8세 이하로 구성된 팀이다. 그러나 공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병아리 축구'를 연상한다면 착각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현란한 개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기 위치를 정확히 지키며 조직적인 플레이를 한다. 때로 격렬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치가 하는 일은 "잘했어. 바로 그거야"라고 칭찬해 주는 것뿐이다.

터치 라인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던 학부모 잉카 카우프만은 "아이가 축구를 통해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으면 좋겠다. 미하엘 발라크(바이에른 뮌헨)같이 유명한 선수가 되면 좋겠지만. 글쎄… 축구를 규칙적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여느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 클럽 축구는 유소년 단계부터 승강제(하위 팀이 하부 리그로 떨어지고, 상위 팀이 상부 리그로 올라가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대회 우승이 아니다. 그저 축구를 즐기고 주말 게임을 통해 페어플레이 정신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지도자는 대부분 직업이 있고 저녁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클럽의 스폰서나 시청 등의 공공기관으로부터 보조를 받기 때문에 축구를 배우는 데 부모가 내는 돈은 한 달에 5유로(약 6000원) 정도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한국 소녀 이다혜(13)도 독일 클럽 축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독일에서 태어난 다혜는 13~15세 남자팀(마카비)과 프랑크푸르트 클럽 산하 여자 유소년팀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여자 팀은 세계랭킹 1위인 독일 대표 선수 6명을 보유하고 있는 최강 팀이다. 여자 팀도 하기 힘든데 남자 팀까지? 부모가 허락할까 싶었다. 그런데 다혜 아버지의 대답은 뜻밖이다. "독일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학교 생활과 전혀 별개다. 일주일에 축구를 안 하는 날이 하루뿐이지만 학교 성적은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본인이 좋다고 하면 계속 뒷바라지를 할 생각이다."

한국이 프랑스와 예선 2차전을 벌일 라이프치히는 월드컵이 열리는 12개 도시 중 유일하게 옛 동독 지역에 있다. 동독 시절 10만 명을 동원해 매스게임을 했다는 라이프치히 경기장이 월드컵의 무대다. 이곳에서는 4부리그 소속인 FC 작센 라이프치히 팀의 홈 경기가 열린다. "평균 관중이 얼마냐"고 묻자 월드컵조직위 직원은 "얼마 안 되는데…. 한 5000명 정도"라고 대답했다. 4부리그에 5000명이 적은 숫자라니.

축구장 옆 실내경기장에는 육상트랙.체조장.축구장 등 각종 시설이 갖춰져 있다. 선수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자유롭게 시설을 이용한다. 독일 체육정책의 모토인 '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sport for all)'가 구현되는 현장이다. 독일 스포츠, 나아가 독일 축구의 저력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누구나 즐겁게 축구를 즐기는 가운데 베켄바워가 나왔고, 올리버 칸이 배출됐다.

독일 축구는 영광과 좌절의 역사를 담고 흘러왔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우승으로 축구 강국에 들어섰고, 74년 서독 월드컵과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94년 미국, 98년 프랑스에서는 8강에서 탈락,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32년 만에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독일은 16년 만의 우승을 노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2위를 했기에 기대치는 더욱 커졌다. 통독 이후 첫 월드컵 개최라는 의미도 크다. 라이프치히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토마스 하우저는 "독일은 실업률이 10%를 넘는다. 여러 상황이 안 좋은 이때 월드컵 트로피를 가져온다면 국민 통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게르만 전차' 독일. 그 진군의 원동력은 '경쟁을 통해 조화를 배우는' 스포츠 정신에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라이프치히.하노버=홍은아 통신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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