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경제 용어] 가상계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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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가상계좌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최근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한 정부의 각종 규제가 나올 때 자주 등장했죠.

입금 쉽게 개별 고객에 부여한 번호 #실제 입금자 확인하기 어려운 탓에 #자금 세탁·탈세 등에 악용되기도

은행 등에 계좌를 개설하려면 금융거래 당사자가 본인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1993년 도입된 금융실명제(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죠. 그렇지만 가상계좌는 금융실명제 예외가 인정됩니다.

가상계좌는 업체가 다수의 고객이 송금한 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객에게 부여한 고유의 계좌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공과금 수납이나 학교 등록금, 아파트 관리비 등을 거둬야 하는 기관이나 회사 등에서 사용합니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예를 들어볼까요. 매달 주민들에게 관리비를 받아야 하는 관리사무소는 B은행에 사무소 명의의 계좌를 개설합니다. 이 계좌가 이른바 모(母) 계좌입니다. 이 모 계좌에 개별 아파트 주민(동호수)에게 부여한 고유의 계좌(가상계좌)가 연결됩니다. 업체가 건당 일정액 수수료를 내면 여러개의 가상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가상계좌는 고객 이름별로 임의로 부여된 번호입니다. 예를 들자면 C동 101호 주민을 식별하기 위해 부여된 전산 코드입니다. 이 가상계좌로 관리비가 입금되면 C동 101호가 관리비를 낸 것으로 처리됩니다. C동 101호에 사는 주민 중 누가 입금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는 가상계좌의 이런 속성으로 인해 자금 세탁 등 불법 거래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예로 돌아가 볼까요. D라는 사람이 E라는 사람 명의의 암호화폐 거래소 가상계좌로 입금한 뒤 E가 암호화폐 거래로 번 돈을 E의 다른 시중은행 통장으로 보내 출금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렇게 되면 D가 E에게 돈을 보냈지만 실제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탈세나 자금 세탁 등에 가상계좌를 악용할 수 있고, 암호화폐 거래가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거죠. 그래서 금융당국은 기록이 명확하게 남을 수 있도록 거래자 계좌와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가 동일한 은행일 경우에만 입출금을 허용했습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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