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야당 대비 총 동원 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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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 단행된 민정당 당직 개편은 당내 가용 자원을 모두 등장시킨 총 동원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때보다 대야 협상이 중요한 시기에 노태우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윤환 전 정무장관을 원내 총무로 내세우고 당내 온건파의 리더인 이종찬 의원을 정무장관으로 배후 지원토록 뒷받침하는 대화 체제를 구축한 일면 대내적으로는 군 출신인 박준병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기용, 총선 패배로 풍비박산되다시피 한 당 조직을 수습하려는 2원 구도다.
대화와 협상을 전면에 강조하면서도 배후를 경성구조로 짠 노 대통령의 친정체제 구축이기도하다. 특히 육사 동기인 정호용·김식씨와 후배인 정순덕 의원, 노 대통령이 각별히 아끼는 임방현 중앙위 의장(유임), 심명보 전 사무총장 등을 중집위에 포진시킨 것도 당에 대한 강한 장악을 염두에 둔 듯하다.
상임고문으로는 국회 의장에 내정된 김재순씨와 채문식 전 대표위원, 김정례 의원 외에 박준규·유학성씨를 배치해 노 대통령 중심 체제를 보완하도록 하고있다.
올림픽 이후 재 신임 투표가 제6 공화국의 단명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계기로 보고 「앞으로의 1년」에 당력을 총 집중하겠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때문에 문민 정치의 표방이라는 원래의 구도와는 달리 군 출신이 예상보다 많이 등용됐고 구 공화당출신 인사들이 중용 되는 결과가 되어 군민, 신구가 뒤섞이는 복합체제가 됐다.
앞으로 개원협상이 민정 당이 맞을 첫 시련인데 이 복합체제가 청와대측의 낙관적인 정세분석처럼 원활히 가동될지 관심거리다.

<차기 후계 고려도>
○…당직 인선은 이종찬 의원의 기용문제와 구연을 배경으로 강력히 대시한 박준병 의원 때문에 막판에 자리바꿈 하는 등 엎치락뒤치락 2시간 여 혼선.
당초엔 문민정치 실현 약속대로 사무총장에 이한동 의원, 총무에 김윤환 정무장관을 두고 정책위 의장에 이종찬 또는 남재희 의원, 정무장관에 이종찬 의원 안을 검토.
그러나 『비상 시국에 이것저것 가릴 것이 아니라 모두 나서는 총 동원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돼 총원 망라 쪽으로 구도변경.
차기 후계 구도를 고려할 때 중용 하기는 너무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배제하기도 어려운 이종찬 의원은 처음엔 어정쩡한 자리인 정책위 의장으로 내정했으나 본인이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당직에서는 빼고 정무장관으로 기용.
이러한 자리바꿈이 있은 데다 총선 참패로 인한 당의 분위기를 잡고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사무총장에 앉혀야 한다는 건의에 따라 이한동 사무총장 안을 다시 검토, 이 의원을 정책위 의장으로 돌리고 그 자리에 군 출신이라는 부담은 있지만 박준병 의원을 전격기용.
한때 이춘구 의원 등이 당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본인은 『절대 당직을 안 맡겠다』고 완강히 고사.
민정당의 관측통들은 『박 총장이 육사 12기 출신이며 광주사태와 관련해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문민정치를 내세우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부담보다 당이 구심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시급성을 감안해 실세를 등장시키기로 결심한 듯 하다』고 배경을 추측.
특히 다선 중심으로 진용을 짠다는 원칙 때문에 재선인 박 총장은 초기에만 거론되다 일단 제외된 듯 했으나 노 대통령이 정호용 전 국방, 이춘구 전 사무총장 등 군 출신 실력자들과 개별적으로 깊숙한 얘기를 나눈 끝에 박 총장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는 후문.
이 과정에서 박 총장 자신도 『어려운 시기에 당을 위해 일조나마 하고 싶다』는 의욕을 여러 채널을 통해 상부에 전달했다는 얘기도 있다.

<대야관계에 비중>
○…한편 2일 오후 5시 30분쯤 중요 당직의 손질을 끝낸 노 대통령은 임방현 중앙위 의장, 박준병 사무총장, 이한동 정책위 의장, 김윤환 원내총무, 이종찬 정무 제1 장관 등 「중요 당직자」5명을 집무실로 불러 한사람 한사람에게 앞으로의 역할을 강조.
약 45분 동안 계속된 신임 당직자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국회 변화에 따른 여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김 원내 총무에게는 공식 대화를, 이 정무장관에게는 막 후 대화를, 박 사무총장에게는 측면 지원을 하라고 일일이 역할 분담까지 거론.

<이 정무 한때 반발>
○…이번 당직 개편에서 한때 마찰음을 빚었던 이종수 의원의 거취와 관련, 청와대측에서는 「총재와의 충분한 대화」등 모양을 갖춰주는데 꽤 신경을 썼다는 후문.
자신에게 의사 타진도 없이 「정책위 의장 설」등이 흘러나오자 이 의원은 『이런 장난은 안 된다. 아무런 당직도 맡지 않겠다』며 적지 않은 반발을 보였던 것.
이 의원은 이미 11, 12대 때 원내총무를 역임한 바도 있고 해서 이번에 당직을 굳이 맡게 된다면 사무총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소문이 나돌자 「고의적인 평가 절하」라고 불쾌해 했던 것. 이 때문에 이 의원이 막판에 정무장관 기용 제의를 받고도 고사해 정무장관 임명은 2차로 나중 발표하는 혼선을 빚는 등 한때 진통.
이 의원이 정무장관 내정 통보를 받은 것은 당직 발표 직전인 2일 오후 4시쯤.
이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1차 사양했으나 두 번째 전화에 청와대로 올라가 노 대통령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고.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옛날과 다른 정무장관이 될 것』이라며 대폭적인 권한 부여를 암시했고 사양하던 이 의원도 『원내총무 경험을 살려 대야 협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락.
이 의원은 이날 밤 신임 박준병 사무총장 및 몇몇 친분 있는 의원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정국 대처방안 및 당 운영 등을 협의.

<원외 대우에 신경>
○…2일 오후 4시부터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인선 협의를 했던 윤길중 신임 대표는 『당직 후보 한사람 한사람씩 놓고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면서도 『연극 무대의 뒷 얘기를 너무 알면 재미없다』고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
인선 과정에서는 특히 내년에 있을 지자제 및 재 신임 투표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과 이에 따라 이번에 낙선한 원외 인사들의 대우에 크게 신경.
최영철 의원을 국책평가 위원장으로 하면서 원외 인사는 주로 국책위원과 국책평가 위원으로 대폭 기용해 의견을 듣는 한편 중앙위 부의장 10명, 정책위 부의장 8명도 전원 원외로 기용하고 당초 원내 1명을 제1 차장으로 기용하려 했던 사무차장도 2명 모두 원외에서 발탁하기로 해 원외에 대해 각별히 배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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