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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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가다운 정치가가 있는가. 요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세일수록 있어야 하는 것이 사람인데, 하마 평에 오르는 면면들은 별로 감명을 주지 않는다.
바로 권위주의 정치, 독재정치의 가장 큰 폐해가 있다면 그것이다. 쓸만한 사람, 커질 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잘라버리고 그저 고만고만한 사람들로 판을 짜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선 일사불란, 누가 시키는 대로 줄만 잘 서면 그것이 바로 유능이고 좋은 인물이다. 지난 20 여 년간 우리 나라 정치현실에서 싫도록 보아온 일이다.
그러나 오늘 그런 정치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것은 지금 집권 여당이 당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이제야말로 우리 나라에선 정치인다운 정치인이 나서야 할 때다. 그런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몇 가지 조건은 갖추고 있어야한다.
첫째는 개성 있는 인물이다. 개성이란 그 시대, 그 상황에 맞는 정치인을 말한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시대의 정치를 꾸려가려면 에피소드도 많고 폭도 넓어 흉허물없이 서로 무릎을 맞댈 수 있는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인간 관리의 능력이다. 우리 사회는 어줍지 않은 권위주의의 그늘에서 사람을 갈라내는데는 이골이 나 있는데 사람을 끌어안는데는 무관심하다.
80년대 정변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명분도 없이 밀어냈는가. 결국 오늘 그 사람들이 다시 나서서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었다. 가슴에 한만 잔뜩 품고 말이다.
세째는 행동력이다. 우리는 행동력이라면 밀어붙이는 경우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밀어붙여서 성공한 정치는 적어도 우리 나라에선 아직 없다. 그런 경우는 예외 없이 실패와 망신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치인의 행동력이란 국민이 원하는 일은 소신과 결단력 있게 밀고 나가는 경우다.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을 괴롭히는 일에만 소신을 발휘해왔다.
네째는 비전이다. 비전이란 내일, 내년, 5년, 10년 후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일이다. 정치인에겐 예언 통찰력과 선견력, 그에 필요한 정보와 탁월한 판단력이 있어야한다.
자, 이런 글을 쓰고 보니 인물 찾기는 더 더욱 어려워졌다. 난세는 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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