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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관료들 국보위 향해 발빠른 처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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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0년 6월5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가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자 권력의 중심은 순식간에 청와대에서 전두환 상임위원장과 군부로 옮겨갔다.
상대적으로 최규하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것이 눈에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보위 발족 전까지만 해도 군인사를 빼고 나머지 대통령의 권한은 그런대로 행사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사실상 내각의 권한을 거의 국보위가 장악하다시피 했다.
최대통령의 참모들은 최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을 이렇게 실명했다.
한 측근은 그가 4·26이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되었고, 또 외교관으로 조용히 일해온 경력등으로 인해 국가 위기에 걸맞는 지도력을 거의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을 첫째 이유로 꼽았다.
중요한 업무에 대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시간을 다투는 일에 지나치게 신중히 대처함으로써 모든 일을 군사작전 수행하듯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려는 군부로부터 점차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스타일에 대해서는 청와대 참모들도 내심 안타깝게 생각했으며 최광수 비서실장·서기원 공보수석·이원홍 민원수석등이 누차 지도력 발휘를 촉구한 적도 있었다.
한 참모는 『스페인의 「카를로스」국왕처럼 군부와 극좌·공산세력을 견제하고 언론과 지식인들의 호응을 끌어내 위기를 극복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의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최대통령은 『어렵구먼』이라는 반응을 보였을 뿐 뚜렷한 결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최대통령이 군부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최대통령은 주요 군지휘관들로부터 의전적인 신고를 받기는 했으나 군의 인맥, 파워의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으며 청와대 비서관중에도 군에 정통한 사람이 없었다.
최대통령과 군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최광수 비서실장·이원홍 민원수석등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수도권 주변의 군사령관등과 접촉했으나 오히려 군으로부터 『대통령이 그렇게 우유부단해서야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라는 불평을 듣기 일쑤였다고 한다.
최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 사회혼란, 3김씨의 과열 경쟁이 점점 문제점으로 부각되자 군부의 개입 의지는 점점 굳어졌고 노골화했다.
또 권력의 모양이 국보위 중심으로 바뀌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관료들이였다.
법에도 없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도 눈치 빠른 사람은 청와대에서 받아야할 업무 결재를 국보위에 먼저 들고오는 현상을 보였으며 전두환 상임위원장이 지방의 홍수시찰을 나가자 충북 K지사 같은 사람은 완전히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해 전상임 위원장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전상임 위원장이 K지사를 칭찬하자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관료들간에 은근히 「잘 보이기」경쟁 같은 것이 조성되었다.
엉성하게 구성된 국보위는 순식간에 막강한 힘을 갖고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나갔다.
13개 분과위중 운영·사회정화분과위는 특히 힘을 쓰기 시작했다. 운영분과위는 전장군과같은 11기인 이기백소장(전국방장관)이 위원장이었고 최평욱대령이 간사였다.
또 사회정화분과위는 육군헌병감 출신의 김만기씨가 감시 위원장을 말았다가 이춘구준장 (육사14기)에게 넘겨주었으며 허삼수대령이 간사에 앉아 있었다.
이 2개 분과위가 삽시간에 관심을 끈 것은 곧 어마어마한 개혁조치가 있을 것이란 소문과 함께 그 주역이 이들이란 얘기가 나돌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보위는 군출신의 몇몇 분과위원장과 각 분과위의 간사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위원장 중에는 이기백운영(육군소장) 이광노내무(육군소장) 오자복문공(육군소장) 이춘구사회정화(육군준장)위원장이 그들이며 최평욱운영(대령·육사16기) 김성칙법사(대령·육사16기) 정만길외무(대령·육사16기) 민병돈내무(대령·육사15기) 최상진외무(대령·육사17기) 김상준문공 (대령·육사19기) 박효진농수산(대령·육사12기) 유종렬농수산 (대령·육사17기) 권혁승교체(대령·ROTC1기) 안무혁건설(대령·육사14) 허삼수사회정화위(대령·육사17기)간사등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기백 운영위원장이 국보위에 참여하게된 배경을 들어보면 이들이 국보위 발족계획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장군은 전방사단장으로 있다가 5월 중순쯤 갑자기 서울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비무장지대에서 간첩을 사살하는 공로를 세운 이장군은 『서울소식이나 군수뇌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며 서울에 와서 비로소 국보위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에 온지 며칠만에 보안사로부터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운영위원장 임명장을 주더라는 것이다.
이장군이 국보위 설치 배경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된 것은 6월초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만났을 때였다.
전사령관은 『계엄사가 정부를 통제해야겠는데 군이 직접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어』라고 한 뒤 『군이 가장 효과적으로 정부를 통제하고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받지않도록 하기 위해 민군합동회의를 만든 것이 국보위』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국보위를 책임지고 운영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부터 이위원장은 국보위가 해야될 일을 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각분과위원장들과 보안사, 그리고 수경사에 우리사회가 개혁해야 할 과제들을 정리,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각부처와 군정보기관에서 제출된 문제점들은 취합해 간사회의에 넘겨졌다.
이위원장은 국보위 일을 해나가면서 전두환 사령관에게 굉장한 「싱크탱크」가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허화평·허삼수대령이 주도하고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허화평대령은 이위원장이 육사훈육관으로 있을 때 생도였기 때문에 『참으로 똑똑하다』는 인상을 갖고있었고 허삼수대령은 강직함이 군내부에 이미 널리 알려져 전사령관이 믿음직스런 참모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이처럼 국보위는 엄밀히 말하면 전두환 보안사령관·노태우 수경사령관과 허화평·허삼수대령등이 결국 핵심중의 핵심 역할을 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육군중장으로 국보위 임명직 위원이었던 진종채씨는 『핵심을 빼고는 모두 이름만 걸어놓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자신은 국보위 위원으로 임명되는 사실을 사전에 전혀 몰랐고 사후에 문서한통이 대구의 ○○사령부로 우송돼 알았다는 것이다.
그후 한두 번인가 저녁회식에 참석한 바 있으나 국보위 일에 관해서는 논의나 상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법사분과위원이었던 김용균씨(당시 중령)는 『5월30일 저녁 국방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을 때 신원을 밝히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내일 삼청동 공무원 교육원으로 나와 문상익씨(당시대검총무부장)를 만나보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나가보니 이종남(현검찰총장) 최영광(현서울남부지청차장) 박철층(현대통령정책보좌관) 검사와 손진곤판사(현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김성훈육사교수, 우병규 국회전문의원등이 나와 있더라는 것이다. 소위 국보외의 법률팀들이다.
정관용 국보위사무처장(전내무장관)은 『국보위 운영은 대부분 이기백 운영위원장이 맡아서 했고 각 분과위별 주요업무처리에는 이춘구·안무혁·최평욱·허삼수·민병돈씨등 현역군인들이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현역군인들과 관료들간에 감각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이따금 있었다.
예를 들어 상공분과위에서는 물리적인 기업통폐합문제가 나오자 금진호위원장(당시 상공부기획관리실장)이 난색을 표했다.
지금까지 그 업무를 관장해온 상공부 관리로서 하루아침에 방향을 급선회해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두부모 자르듯 한다는 것이 사리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또 현실적으로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위원장은 이기백 운영위원장에게 『나는 그런 일을 할 적임자도 아닐 뿐 아니라 그같은 회의에 앉아있을 수조차 없으니 제발 좀 봐달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금위원장이 노태우 수경사령관과 동서간이고 또 워낙 간절히 부탁해 기업통페합문제를 논의하는 상공분과위원회에 마지못해 나가 무게를 잡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안무혁 건설위간사같은 사람은 『관료출신들이 기업측과 유착됐기 때문이 아니냐』고 몰아세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80년 여름의 서슬퍼런 개혁은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고 그때마다 국민들은 정국의 앞날을 긴장속에 주시하게 된다. <지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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