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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의 '母校' 보성高에 동문 문인기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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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소설 '날개'를 쓴 이상, '삼대'의 염상섭, '빈처'의 현진건 등은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점 외에 모두 보성중.고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최승구.진학문.현상윤.변영태.김기림.김환태.이종명.김상용.조영출.김학철.임화.고유섭.윤곤강.마해송 등 저명한 문인들도 식민지 시절 보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기념하는 상설 전시장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보성고(교장 김갑철) 교정에 마련된다. 단일 고교 차원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규모다. 9월 4일 오전 10시 교정에서 '보성과 한국문학'이란 제목의 특별전으로 문을 연 이후 이 전시장은 후학들의 독서와 학문의 산 교육장 역할을 하게 된다.

김갑철 교장은 "올해 개교 97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개교 1백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준비했다"면서 "오랜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수많은 문인과 저술가를 배출해 마치 백두대간과 같은 정신적 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도서관 건물 3층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작가별 대표작과 활동 상황 등이 소개된다.'태백산맥'의 조정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갈 수 없는 나라'의 조해일, 그리고 성찬경.박희진.김정환 시인 등 이 학교 출신으로 해방 이후 활동한 생존 문인들의 작품과 활동 상황도 소개된다.

철학자이자 문필가로 우리 사회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도 보성 출신으로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희귀 작품은 대부분 고서수집가이면서 보성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오영식 교사가 30년간 모아온 자료들이다.

한 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저명 문인들이 배출된 까닭을 묻자 오 교사는 "1906년 개교 이래 조선의 역사와 말을 배울 수 있는 '민족 사학(私學)'이란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우수한 인재들이 보성을 꼽아서 오기도 했다"면서 "주시경.김두봉.김용준.박종화.윤오영 등 당시 보성에 재직했던 쟁쟁한 교사진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것으로만 알려졌던 현진건이 보성에도 다녔음을 관련 자료를 모두 뒤져 처음으로 밝혀낸 것은 큰 보람이었다"면서 오 교사는 "보성에 재직했던 교사이자 문화인들의 작품과 업적도 앞으로 전시장에 함께 소개하고 싶고, 나아가 이 같은 자료를 모두 모아 '보성문인사'(普成文人史.가제)를 펴내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회 준비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이 학교 출신인 탤런트 조형기씨가 MBC 텔레비전의 '브레인 서바이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1등상으로 받은 1천만원을 기부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조씨는 "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이 상설 전시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니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더욱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면서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이번 사업이 문화인 기념 사업의 중요성에 눈을 뜨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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