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 김영한 일지 … 대법원 증거능력 판단이 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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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이번 사건은 곧 대법원의 저울 위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선고 직후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항소심, 간접증거 이유로 채택 안 해 #특검 “부정청탁 입증할 핵심” 주장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다룰 가능성

상고심은 1·2심의 판단에 법리적 문제가 있는지를 살피는 ‘법률심’이다. ‘사실심’인 1·2심처럼 세세한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법리적 쟁점에 대해서만 심리한 뒤 판결에 대한 인용·파기 여부를 결정한다.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이면 판결이 확정되고, 파기되면 2심에서 다시 재판해야 한다.

이번 항소심 선고를 놓고 일각에선 ‘특검의 완패’란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1심(징역 5년)에 비해 반 토막 난 항소심 형량(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아직 이 부회장 측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는 전망이 나온다.

1·2심 재판부의 판단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등 법리 다툼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리 쟁점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한 만큼 대법원의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실제 ‘부정 청탁’이 오갔는지와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졌느냐는 대법원 심리에서도 핵심 쟁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 청탁’과 ‘경영권 승계 작업’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제3자뇌물죄로 기소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한 무죄 선고로 이어졌다. 반면 1심은 ‘묵시적 청탁’이 있다고 봤다.

법리 다툼이 치열했던 만큼 결국 대법원 판단이 이 부회장과 특검의 ‘최종 운명’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한 전직 부장판사는 “특검이 부정 청탁을 입증할 새로운 카드를 내놓지 못한다면 항소심 선고를 뒤집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재산국외도피에 대한 대법원 심리도 주목된다. 재산국외도피는 이 부회장에게 제기된 혐의 중 형량(50억원 이상 시 징역 10년~무기징역)이 가장 높다.

1심은 삼성 측이 코어스포츠의 독일 계좌로 송금한 36억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봤다. 정유라(22)씨의 승마 지원에 쓰인 이 돈을 뇌물로 인정했지만, 재산국외도피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씨 등에게 용역비가 넘어간 이상 삼성 측이 직접 유용할 목적으로 돈을 빼돌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 채택되지 않은 증거들을 대법원이 어떻게 볼지도 관심이 쏠린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59)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과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업무일지를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傳聞)증거(전해 들은 말, 기록 등 간접증거)’는 진실을 증명할 근거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특검은 이 증거들을 경영권 승계 작업과 부정 청탁을 입증할 ‘핵심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대법원에서 증거 능력을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전직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가 연루된 대형 사건인 만큼 일각에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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