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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벌써 세번째 야밤통보 "CIA 아침 보고서 노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야밤 통보 맛들인 北 속셈…"美 CIA 모닝브리핑 1순위 욕심"  

1월 19일 밤 11시31분, “예술단 방문 중지하겠다”→1월 26일 밤 11시 26분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 취소하겠다”→2월 4일 밤 11시42분 “고위급 대표단 단장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통일부 발표 기준)

 북한이 최근 심야에 일방적으로 대남 통지문을 보내고 있다. 북한은 왜 굳이 심야 시간을 택해 이같은 통보를 하는 걸까.

 지난달 26일 밤에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를 취소하겠다는 통지는 행사 예정일인 2월 4일을 엿새 앞두고 이뤄졌다. 지난 4일 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한다는 통지문도 대표단 방남 도착 예정일인 9일을 닷새 앞둔 시점에 왔다. 굳이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에 통지문을 보내야할 위급성이 없어 보인다. 다음날 정상 근무 시간에 보냈어도 될 사안이란 얘기다. 이를 두고 북한이 일부러 심야 타이밍을 골라서 극적 효과를 노리면서 판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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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심야 타이밍의 효과를 잘 알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015년 8월 목함지뢰 도발 당시,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심야에 소집했었다. 김정은은 이 심야 회의를 통해 준전시상태를 선포해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가 당시 내놓았던 심야 회의 사진은 거의 모든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김정은은 당시 주도권을 잡고 대화 국면까지 만들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우연하게 심야 통보 패턴을 반복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나름의 의도와 전략이 녹아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북한이 겨냥한 전략의 대상엔 한국 뿐 아니라 미국도 포함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남측에서는 새로운 뉴스거리 발생이 잦아든 심야 시간에 속보를 터뜨려 관심을 독점하고, 오전 업무 시간이 한창인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일거양득이다.

 지난 4일 김영남 대표단장 통지의 경우도 한국 시간으로는 밤 11시 42분이지만 워싱턴은 오전 9시 42분이었다. 북한 전문가인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오전에 미 중앙정보국(CIA) 마이크 폼페이오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올릴 아침 보고서를 만들 시점을 노려 자신들의 우선순위를 높이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도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언론과 정부의 생리를 잘 활용하고 있다”며 “심야 타이밍을 선택해 극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만경봉호를 타고 부산 다대포항에 도착한 북측 응원단. 북한은 지난 4일 통지문을 보내 6일 방남하는 삼지연관현악단도 이 만경봉호를 태워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중앙포토]

지난 2002년 만경봉호를 타고 부산 다대포항에 도착한 북측 응원단. 북한은 지난 4일 통지문을 보내 6일 방남하는 삼지연관현악단도 이 만경봉호를 태워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중앙포토]

  김정은 위원장이 실제로 심야에 지시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행성인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를 늦게 받거나, 장고 끝에 관련 지시를 저녁 늦게 했을 가능성이다. 양무진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실제로 지시를 늦게 내렸기 때문에 북한도 심야에 통보를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4일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 사진. 평양 트롤리버스를 심야에 시승한 모습이다. [노동신문]

북한이 지난 4일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 사진. 평양 트롤리버스를 심야에 시승한 모습이다. [노동신문]

다른 해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고 싶을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심야 통보라는 장치를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 4일 심야에 평양 시내 트롤리버스를 타는 일정을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주민들이 사용하는 교통시설을 우려해 밤잠도 잊고 몸소 시승한 애민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야심한 시각을 일부러 골랐으리라는 해석이다. 양 교수는 “김일성ㆍ김정일 때부터 북한은 자신들의 최고지도자들이 ‘밤낮없이 고민한다’는 표현을 즐겨 써왔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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