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낡은 족쇄 금산분리, 조속히 폐지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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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산 분리는 1982년 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국내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의 4% 이상을 갖지 못하도록 보유한도를 설정해 놓은 제도다. 당시로선 대기업의 시중 자금 독식을 막고 기업 투명성 제고에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현금이 넘치는 대형 제조업체들이 시중 자금을 긁어갈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국내 금융시장에 외국 투기자본이 설치면서 금산 분리는 오히려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돼 버렸다.

지구상에서 우리처럼 엄격한 금산 분리를 고수하는 국가는 없다. 미국조차 은행업과 산업자본을 구분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비은행 금융기관인 GE캐피털을 통해 전체 매출의 44.2%를 올리고 있다. 반면 국내 산업자본은 보유 자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데 역차별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내년에 매각될 우리은행까지 외국자본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 당국의 금산 분리 고수 주장은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편의적 발상일 뿐이다. 은행 '사(私)금고화' 우려는 자신들의 역할인 대출 건전성 감독만 제대로 하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일이다. 금산 분리는 시장원리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과거의 유물이다. 지금은 과(過)투명성을 우려할 만큼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됐다. 산업자본은 넘치는 현금으로 고민이고, 금융회사들은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팔리는 왜곡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라도 금산 분리는 한시바삐 폐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