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골라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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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세장 분위기가 썰렁하다.
일부 지역에서 일당으로 동원된 운동원끼리 서로 치고받는등 난투극을 벌이고 고함을 질러 제법 열기가 있는 듯 하지만 순수유권자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유권자들의 참여가 적을 뿐 아니라 너무 냉담하다할 정도다.
이 같은 냉랭한 분위기는 불과 3년 전에 있었던 2· 12총선때에 비하면 퍽 대조적이다.
그때는 2월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세기간중 연인원 5백만명 이상이 합동연설장을 찾아 유권자 4명중 1명은 후보들의 연설을 들었다. 서울·부산등 대도시는 보통 4만∼5만명, 최고 10만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극소수의 동원된 인원을 제외하곤 청중의 대부분은 스스로 찾아온 유권자들이었다. 요즘의 유세장 평균인파 2천∼3천여명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민주정치에 있어 선거는 하나의 축제이기도 하다.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선거철에는 평소보다 언로가 더 개방되고 자유가 만끽되고 정치적 관용의 폭이 넓어지는게 보통이다.2·12총선때 그같이 많은 인파가 유세장마다 몰렸던 것도 5공화국 출범이래 억압되고 막혔던 언로가 처음으로 활짝 열렸던데 있었다. 짓눌려왔던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갈증이 유세장에서 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13대 총선은 그와 같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몇 가지 요인들이 있는것 같다.
첫째는 뚜렷한 쟁점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새마을 비리등 5공화국의 비정에 대한 야당의 파상적 공세가 있긴 하지만「안정」과「견제」라는 도식적인 쟁점외에는 뚜렷하게 부각되는게 없다.
야당후보들이 5공화국 비리등을 폭로하고 있지만 민정당이 이를 적극 방어하지 않을뿐 아니라 국민들도 그 비리·부정이 6공화국과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는 주장에는 아직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쟁점으로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
12대 총선때의「군정종식」이니,「민주화」니 하는 굵직한 쟁점들에 비해 호소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둘째는 야당의 난립에서 오는 유권자들의 실망이다. 선거가 민주주의적 유의성을 갖기 위해서는 선거 자체가 갖는 의미가 중요해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어느정도 경쟁이 비등해야 하는데 이번은 야당의 분열로 유의성이 대부분 상실돼버리고만 것이다.
선거를 통해 야당이 집권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국회를 지배할 제1당이 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시 피할뿐 아니라 야당간의 산표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했고 어느 야당을 택해야 할지도 확실히 부각되지 않고 있다.
더우기 지역감정이 재현돼 특정지역에서 특정정당에 대한 몰표가 쏟아질 가능성 때문에 전반적인 유권자의 관심은 그만큼 떨어지고만 것 같다.
세째로는 날로 더해가는 타락·폭력분위기다. 『까마귀 나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말대로 선거판이 너무 혼탁하고 시끄럽다보니 유세장으로 쏠리던 유권자의 발길이 저절로 돌아서고 만다.
끝으로 공천의 난맥상이다. 여야 모두 2백여명의 후보를 단시일내에 고르다보니 에러가 너무 많아 유권자의 수준을 못따라가는 후보들의 등장에 유권자들은 식상했거나 선거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듯한 분위기다.
이 같은 몇 가지 이유등으로 야당의 온갖「바람작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선거붐은 일지않고 있다.
민주정치의 성공여부가 선거에 의해 결정되고 선거의 주체가 국민이라고 할 때 이 같은 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냉담·무관심은 바로 민주정치 그 자체에 대한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을 우리손으로 뽑았다고 해서 할 일을 다했다거나, 민주화를 성취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제부터 어떤 국회를 갖느냐는 대통령을 뽑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새 국회는 유신국회이래 처음으로 국정감사권을 갖고 있고 대통령에 의한 일방적인 해산권행사가 배제된 국회인만큼 정치적 권한이 막강하다. 따라서 그 구성의 출발이 되는 선거에서부터 국민들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선거가 제대로 되어야 사회내의 주요집단이나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출되고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충족도 가능해진다. 그래야만 정치적 안정도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유혹등에 의한 피동적 투표참여가 많거나 무관심·소외감에 기인한 기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거의 민주적 유의성이 약해져 정치적 불안요인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사람이 그사람, 그당이 그당이라는 생각이 바로 국민들을 선거로부터 소외시키고 격리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다같은 사람이고 같은 당같지만 좀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다 조금씩은 차이가 반드시 있다.
이제는 우리가 정말 선택을 위한 최후의 노력을 해야할 때다. 이를 소홀히 하여「적당한 투표」를 했다가 돌아올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사람을 고르든, 정당을 고르든 지금부터라도 남은 투표일까지 내가 찍을 후보를 열심히 골라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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