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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에 붕 뜬 코닥 주가, 발행 늦어지자 13% 폭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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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30년 전통의 기업이 암호화폐의 거센 풍랑에 휩싸였다. 미국의 필름업체 이스트먼 코닥이다. 암호화폐 사업을 호재로 한때 주가가 급등했다가, 계획이 차질을 빚는다는 소식에 주가가 폭락했다.

암호화폐로 사진 팔고사는 구상 #예정된 1월 31일 “몇주 연기” 공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코닥의 주가는 전날보다 13% 넘게 떨어진 7.95달러에 마감했다. 이날로 예정했던 암호화폐 공개(ICO)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달 22일 이후 7거래일 동안 30% 넘게 급락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에 앞서 지난달 9일 코닥은 야심 찬 계획을 내놨다. ‘웬(Wenn) 디지털’이란 회사와 손잡고 암호화폐 사업에 진출한다는 발표였다. 암호화폐의 이름은 ‘코닥코인’이라고 붙였다. 증시에 새로 상장하는 기업이 기업공개(IPO)로 자금을 모집하는 것처럼 암호화폐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일정을 공개했다. 지난달 초 3달러 선에서 움직이던 이 회사의 주가는 이 소식으로 한때 11달러 넘게 뛰어올랐다. 지난해 4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였다.

코닥은 ‘코닥원’이란 사진 거래 사이트를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이 사이트에선 코닥코인을 이용해 사진의 저작권을 사고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닥코인에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다. 성공한다면 전통 산업의 대기업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꿈’은 길지 않았다.

코닥은 ICO를 연기하면서 “앞으로 몇 주가 소요될 것”이란 공지를 올렸다. 투자자들이 궁금해 하는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코닥은 “미국 증권법에 따라 투자자의 자격 심사를 하고 있다”며 “개인 또는 부부 합산 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이거나, 최근 2년간 개인 소득 20만 달러 또는 부부 합산 소득이 30만 달러 이상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식 사이트가 아닌 유사 사이트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거래 정보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코닥이 지난달 라스베이거스 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공개한 비트코인 채굴기 ‘캐시마이너’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2년 약정으로 빌리려면 임대료 3400달러(약 364만원)를 내야 한다. 기기 유지비와 전기료·보험료 등의 명목이다. 코닥은 이 채굴기로 월 375달러를 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 시세를 1만4000달러로 계산한 예상 수익이다.

만일 임대 기간 2년 동안 비트코인 시세가 크게 떨어지면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1일 오후 한때 비트코인은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1만 달러 밑에서 거래됐다. 글로벌 사진 커뮤니티 디프리뷰에는 “코닥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거나, 비트코인 채굴 사기를 벌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글이 올라왔다.

암호화폐 사업이 좌초한다면 코닥은 또다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코닥의 모태는 조지 이스트먼이 1884년 설립한 ‘이스트먼 드라이 플레이트&필름 컴퍼니’다. 1892년 이스트먼 코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코닥의 일회용 카메라는 매년 1억 대 넘게 팔리는 인기 상품이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많이 늘어나면서 코닥의 아날로그 필름이 설 자리는 급속히 좁아졌다. 2012년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2013년 법원 결정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했다.

주정완·이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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