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화학비료와 유기농산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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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서로에게 의존하는 거대한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간다. 자연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먹이사슬의 핵심은 화학물질의 재활용이다. 모든 생물은 '먹이'를 통해 다른 생물이 만들어 놓은 화학물질을 섭취해 이용한다는 뜻이다. 식량으로 사용하는 농작물도 먹이가 필요하다. 농작물에게는 우리가 남긴 음식물이나 배설물, 또는 목숨을 다한 동식물의 사체(死體)로 만든 천연 퇴비가 '먹이'인 셈이다.

문제는 자연에서의 그런 재활용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른 생물에게 소중한 먹이가 되는 물질들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거나, 깊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거나,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손실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면 결국 지력(地力)이 떨어지고 농작물의 수확량도 줄어든다. 북한이 환경에 나쁘다는 화학비료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몇 년간 그런 손실이 너무 심각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물에 잘 녹는 질소 화합물들은 생태계의 순환에서 쉽게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질소는 DNA라는 유전물질과 생체의 화학반응을 정교하게 조절해 주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필수 원소다. 물론 지구의 대기 중에는 엄청난 양의 질소가 있지만 대부분의 생물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두 개의 질소 원자들이 너무 단단하게 결합돼 있는 질소 분자는 어떤 생물도 쉽게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연에는 생물들을 위해 신비로운 대책이 마련돼 있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는 미물(微物)인 박테리아와 불안정한 구름에 의해 만들어지는 번개가 바로 그것이다. 박테리아와 번개가 공기 중의 질소를 많은 생물이 활용할 수 있는 천연 비료로 바꿔준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생물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그런 신비 덕분이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박테리아와 번개에 의존하는 친환경 유기농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 해상 운송이 가능해지면서 멀리 떨어진 칠레에서 초석(礎石)을 실어와 천연 비료로 쓰기도 했다. 칠레 초석은 바닷가 절벽에 쌓인 바닷새의 배설물이 굳어져 만들어진 질소 화합물이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의 도시화는 귀중한 질소의 손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도시 생활에 꼭 필요한 수세식 화장실과 쓰레기 처리장이 질소의 자연적인 순환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편리하고 위생적인 도시 생활이 자연 생태계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스스로 그 대가를 치르거나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918년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개발한 암모니아 합성법을 이용해 생산하는 화학비료가 그 대안이다. 당대에 불행했던 하버의 발명 덕분에 우리도 공기 중의 질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화학비료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구 사용하면 농토와 자연의 균형이 깨져 버린다. 그렇다고 화학비료가 무작정 나쁘다는 인식도 현명하지 못하다. 문제는 정확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혜로운 선택과 절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