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하니까 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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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 양잿물 참기름과 농약 콩나물로 여론이 격분하고 있을 때한 독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요즘 세태의 정곡을 찌르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바로 가짜 참기름 제조업자라고 소개한 그는 처음부터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꺼냈다.
얘기인즉 기자 양반들이 뭘 잘 모르더라, 가짜 참기름이란 깻묵에 양잿물만 섞는다고 되는게 아니다, 살만 추리고 버린 닭고기 기름과 음식점에서 튀김을 만들고 버린 폐식용유 따위를 깻묵과 양잿물에 섞어 가공하는 것이라고 그 방법을 소상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그가 전화를 한 목적인듯 싶었다.
『기름장사 열에 아홉은 그렇게 강사를 하고 있어요. 이런 판국에 나만 혼자 뭐 잘났다고 양심적으로 해봤자 누가 알아주나요? 진짜 참기름 짜서 남보다 2∼3배 더 받으면 미친놈이라고 욕먹기 딱 알맞지요. 눈깔 하나 달린 놈들만 사는데서는 눈 둘 달린 사람이 병신취급 받는 다잖아요. 그런 세상이예요. 이놈의 세상이….』
요는 그가 가짜 참기름 장사를 하는 것은 자기 본성이 원래 비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다 그렇게 하므로 자신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그의 잘못을 모두 남 즉, 세태 탓으로 돌리고 그 불가피성은 눈 하나인 외눈이 세계에서의 정상인의 처지에 빗대고 있었다.
이 가짜 참기름 강사의 「외눈이 이론」이 비단 그 사람만으로 국한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까지 각종 행락 쓰레기가 널려 있다. 이곳에 왜 쓰레기를 버리느냐고 물으면 남들도 다 버렸길래 나도 버렸다고 대담한다. 나 혼자 안 버린다고 이곳이 깨끗해지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러시아워의 도심에서는 운전자들끼리의 언쟁이 곧 잘 눈에 띈다. 한목은 왜 끼어드느냐고 욕설이고, 다른 한쪽은 바쁜데 좀 양보하면어디가 덧나느냐고 삿대질이다. 권력있는 자가 뇌물을 받아 챙기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뇌까릴 것이다.
『어디 이게 나 혼자만인가. 모두 다 먹는데 나만 안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다 그렇고 그런거지. 』그래서 뇌물수수는 공직자 사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한달 봉급 불과 기십만원짜리 월급장이가 큰집 지니고 아이들 외국유학까지 시키며 잘들 살아도 하나도 이상히 여기는 사람이 없다. 당연히 그럴줄로 치부한다.
새마을 사건이 별것인가. 돈 갖다 바치면 안 되는 일 없다는데 뭐 좀 해보겠다는 사람이면 어찌 안 바치고 배겨내겠는가. 남들이 다 바치는데 나만 안 바치면 무슨 해코지가 미칠지 두렵기도 해서 모두 굽신거리고 진상대열에 앞다투어 동참한 결과가 그거 아니겠는가.
누구나 자기의 행위가 사회정의와 도덕률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탓을 남에게 돌리면서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총선열기가 높아지면서 선거판에서 외눈이의 자기합리화 논리가 절정을 이루는 느낌이다. 후보들은 실현가능성여부는 안중에도 없이 공약을 남발하고, 정부의 계획사업을 마치 자신의 개인업적인양 떠들어대고 있다. 경쟁 상대의 사생활과 전력을 들춰내고,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라도 상대를 짓밟아 딛고 일어서려는 후보들의 광기가 난무하고 있다. 금품이 살포되고 향응이 베풀어지며 관광여행이 북적거리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들대로 행여나 그 선심과 매수의 아수라장에서 소외될세라 우왕좌왕하며 일당· 식권· 선물을 받고 향응을 즐기느라 정신들이 없다. 입후보자들은 『다른 후보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유권자들은 『남들 다 얻어먹는데 나만 빠지면 손해』라는 식이다.
좀 거리를 두고 관찰해보면 이들은 모두 예의 가짜 참기름 강사가 말한 외눈이들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외눈이가 판을 치는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외해서는 멀쩡한 한쪽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어디까지나 혼탁하고 왜곡된 세태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남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순전히 핑계이거나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만 할 수 없는 구석도 있긴 하다.
그러나「그들」은 누구이고 또 「나」는 누구인가. 나 또한 그들이고 그들 속의 하나가 나 아닌가.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순환논리의 모순을 까맣게 외면하는데 문제의 심각성과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외눈이 세상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산과 계곡에 쓰레기는 더욱 쌓이고 교통질서는 날로 엉망의 도를 더해 가고 있다. 부정과 비리는 확산· 심화되고 있다. 선거풍토는 30년전의 「막걸리 선거」 「고무신짝 투표」에서 발전하기는 커녕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노골적이고 악랄한 타락· 탈법으로 전락해가고 있지 않은가.
이 외눈이의 세계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우리 사회 전체가 붕괴해버릴지도 모른다. 도덕적 가치기준이 허물어지고 공공의식이 마비되면 사회의 존립은 위태롭다. 우리 사회에서 외눈이에 대한 핑계는 사라져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안 할 수 없다」는 소신 없고 비굴한 행태의 동기는 결국 탐욕스런 이기주의요, 효율과 성취 우선 사상의 발로에 지나기 않는다.
가짜 참기름 장사의 외눈이 추종이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대리자로서 국사를 담당할 선량후보들이 대부분 불법· 타락 선거운동을 하면서 외눈이 타령만 한다면 문제는 단순치가 않다. 그들이 막중한 국사를 다룰 때도 한쪽 눈을 감는다면 사리의 입체적 시각과 거리감각을 상실함으로써 외눈이의 대세에 휩쓸려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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