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 열린 외국 미술품 수장|국내 작품 값 재편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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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가 외국미술작품의 개인구입과 소장을 자유화하기로 한 것은 최근 밀어닥치고 있는 전반적인 개화 물결을 외면할 수 없는데서 취해진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외국미술작품은 부족한 외화사용을 규제하고, 국내작가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미술관이나 공공기관에만 전시회 유치 및 소장을 허용했을 뿐 개인에게는 이를 사실상 엄격히 금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의 외환보유 상태가 크게 호전됐을 뿐만 아니라 당국의 과보호로 해외미술계의 흐름에 어두워진 국내 작가들의 자질 저하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정부도 강력한 규제의 끈을 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당국이 이번 조치의 구체적 내용으로 국내 화랑에 외국작품을 유치, 전시한 후 판매할 수 있게 하고 개인의 경우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재가를 거쳐 직접 구입할 수 있도록 심의제도를 단서로 둔 것은 이 조치가 자칫 해외미술 작품에의 급격한 투기 붐을 불러일으키거나 저질의 작품을 무분별하게 반입해 오는 등의 부작용을 예방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보다 거의 20년이나 앞서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외국미술품 구입을 개방했던 일본이 질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작품들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들인 후 현재 그 처분에 골치를 앓고 있는 예를 거울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번 당국이 발표한 외국미술작품의 개인구입 및 소장자유화 조치가 국내 미술계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내의 미술애호가들이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자유롭게 접하게 됨으로써 국제화시대에 걸 맞는 고도의 예술적 안목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이다. 아울러 폐쇄된 환경 아래서 작품제작에 임하던 작가들에게도 세계 유명작가들의 작품흐름을 흡수, 그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도록 부추기는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지나치게 고가로 치닫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내 미술작품의 가격이 서구 여러 나라의 예에 따라 합리적인 선에서 재조정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하나의 긍정적인 효과는 기관이나 개인이 떳떳하게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부유층이나 호사가들이 해외미술품을 마구 구입하는 사치바람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조치가 단서조항을 떼고 완전개방 폭으로 갈 경우 일본이 쌓아두고 있는 질 낮은 외국 미술 소장품들이 우리 나라를 유일한 출구로 삼아 쏟아져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외국 미술작품 구입을 자유화하기로 한 정부의 조치는 환영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내다 파는 노력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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