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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한번 만들어볼까? 청소기 회사 다이슨이 믿는 구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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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호 21면

[메가 트렌드 2018] 전혀 새로운 도전자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20억 파운드를 들여 전기차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은 사진은 다이슨 청소기를 바탕으로 카매거진에서 다이슨이 개발할 전기차를 상상한 모습. [중앙포토]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20억 파운드를 들여 전기차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은 사진은 다이슨 청소기를 바탕으로 카매거진에서 다이슨이 개발할 전기차를 상상한 모습. [중앙포토]

전세계를 흔드는 4차 산업혁명은 거래비용이 제로(0)가 되는 ‘수퍼플루이드(superfluid)’ 경영환경을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를 뛰어넘는 초디지털 시대에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국 기업들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검토해 볼 시점이다.

모터·배터리 원천기술 이미 확보 #“파트너 필요 없다, 혼자 가겠다” #로컬모터스는 모든 기술 개방 #창업 뒤 18개월 만에 첫 모델 내놔 #산업간 경계가 무너져가는 시장 #엉뚱한 발상의 도전자 잇단 등장

과거 거래의 비효율성은 필연적으로 시장 진입의 장장벽으로 작용했다. 자동차와 같이 거대 자본과 기술력이 집약된 산업은 신규 시장 진입이 더더욱 어려웠다. 거대 완성차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에 근거한 전통적인 생산과 판매 방식을 통해 독과점 상태를 유지했다. 즉, 자신의 브랜드와 구매력을 바탕으로 부품 기업과 유통망을 장악했고,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해 신규기술도 개발했다.

하지만 앞으로 자율주행차·전기차·공유서비스 등을 기반으로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이 급속히 변화할 전망이다. 완성차 업체의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더 이상 규모의 경제로 밀어붙이는 공급을 통한 수요 창출이라는 전통적인 생산·판매 방식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빅데이터 등 초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유형의 경쟁자들이 커다란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은 완전히 새로운 경쟁에 직면하게 됐다.

구글·애플·스포티파이 색다른 차원의 경쟁

최근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주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단연 다이슨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와 강력한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영국의 가전기업 다이슨은 2020년까지 10억 파운드(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고체형 배터리 개발에도 10억 파운드를 투자할 계획이다. 전기차 분야 투자 금액을 모두 합하면 20억 파운드로 테슬라가 지난 5년간 전기차 R&D에 투자한 금액(28억 달러, 약 3조원)과 맞먹는다.

소형 가전만 생산하는 다이슨이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것은 기존에 전기차를 구동하는 모터와 배터리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맥스 코젠 다이슨 최고경영자(CEO)는 “다이슨은 파트너를 찾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처음부터 자동차 하드웨어를 새로 만들 것”이라며 “자체 배터리 및 모터 기술을 이용해 기존 전기자동차 대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1.5~2배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이슨이 가전업체라는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 등장을 의미했다면, 로컬모터스는 기존 생산방식의 룰을 바꿨다. 로컬모터스는 먼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한 대량생산이라는 오랜 생산 공식을 깨고, 완성차 업계 최초로 3D 프린터를 차량 개발에 적용했다. 개발 과정에서 보안을 우선순위에 두고 비밀주의를 유지했던 기존 완성차 기업과 달리, 모든 기술을 개방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개선할 수 있는 오픈 소스 방식을 도입했다. 2007년 창업 이후 첫 모델인 ‘랠리 파이터’가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8개월에 불과했다. 개발 과정에는 전세계 500여명의 디자이너, 엔지니어, 자동차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전통 자동차 기업에서는 디자이너가 먼저 자동차를 디자인하면, 설계도를 바탕으로 엔지니어가 시제품을 만들고, 다시 디자인을 수정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반면 로컬모터스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온·오프라인으로 협업하며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최적화된 디자인을 찾는 방식으로 개발 과정을 대폭 단축했다. 자동차의 생산은 소규모 공장(마이크로 팩토리)에서 진행됐으며, 판매도 온라인에서만 진행됐다. 오픈소스 3D 프린팅 기술로 화제를 모았던 로컬모터스는 현재 자율주행 셔틀버스 ‘올리(Olli)’를 개발했고, 최근 개최된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3D 프린터로 인쇄한 자율 주행 시각장애인용 셔틀버스 ‘액서서블 올리(Accessible Olli)’를 선보여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이슨과 로컬모터스가 완성차 업계에서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면, 구글·애플·스포티파이 같이 자동차 생태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기업들도 전혀 다른 차원의 경쟁을 시작했다. 구글과 애플은 차량용 플랫폼(안드로이드 오토, 카플레이)를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한편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기업 스포티파이도 차량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핀테크 열풍에 직격탄 맞은 신용카드 업계  

새로운 플레이어는 시장을 지배했던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있다. 이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공식을 새로 써가고 있으며,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마저도 뒤흔들고 있다. ‘바보 같은 일’이라고 여겨졌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성장한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평가받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 기업은 시장 내의 일말의 비효율성마저 제거하며 블록체인 등 초디지털 기술로 시장을 새롭게 정의해가고 있다. 블록체인의 등장과 함께 공유경제의 대표적 성공 모델인 에어비앤비나 우버조차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변화의 속도는 파괴적이고 빠르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라주즈(La’Zooz)는 이더리움 기반의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새로운 개념의 차량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다. 운전자와 이용자 정보는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되고, 거래도 블록체인 상의 스마트계약으로 이뤄진다. 이용자는 차량의 위치를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으며, 차량이 필요하면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만 제공하면 된다. 운전자는 운행 거리에 따라 주즈 토큰(암호화폐의 일종)을 받을 수 있다. 라주주는 개별 사업자의 형태로 개인 간 직접적인 거래가 가능해 진 것이다.

라주즈가 기존의 차량 공유 서비스와 다른 점은 운전자의 위치와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중간단계가 없다는 것이다. 기존 업체가 클라우드를 도입하며 기존 택시업체의 비효율성을 제거했다면, 라주즈는 중앙 통제 방식이라는 마지막 남은 비효율성마저도 제거하고 개인간거래(P2P) 방식을 택했다. 라주즈는 이용자와 운전자 간의 거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주즈 토큰을 발행하는 과정(ICO)’을 통해 커뮤니티 운영비를 얻는다. 거래에 참여하는 이용자가 많아지면 주즈 토큰의 가치 역시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별도의 수수료 구조가 필요없다.

기존 산업의 가치 사슬은 새로운 시장 진입자의 출현으로만 붕괴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시장 진입자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비용은 증가하는 데 비해 이익은 줄어드는 이중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시장 진입자의 등장이 더해져 기존 사업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가장 대표적인 산업이 핀테크 열풍에 직격탄을 맞은 금융권, 그중에서도 신용카드 업계다. 이들은 가맹점 수수료와 할부 금융이 주된 수익원이다. 하지만 신용카드사의 경쟁으로 각종 포인트 제공, 추가 할인 제공, 홍보·마케팅 등 비용은 높아지고 있다. 주요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하 압박으로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여기에 기존 결제 시장에 참여하지 않았던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모바일 페이 서비스를 들고 나왔으며, 카카오와 네이버도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플레이어는 더 편리한 결제 방식 제공 또는 계좌간 이체를 통한 수수료 절감을 통해 이중고에 시달리는 신용카드사를 한층 더 위축시키고 있다. 더욱이 앞선 디지털 기술과 분화된 금융서비스 제공을 내세우는 핀테크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며 신용카드사는 물론 금융 생태계를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다음 회에서는 플랫폼을 구축한 기업이 어떻게 시장을 장악하는지를 살펴보고, 국내 기업들의 성공을 이끌었던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의 문제점과 신(新) 코닥 현상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용어설명]
수퍼플루이드 물리학 용어로 움직이는 동안 마찰이 전혀 없어 운동 에너지를 잃지 않는 액체인 ‘초유체’를 의미한다. 산업적인 관점에서는 수요와 공급, 생산자와 판매자가 직접 연결되는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중개나 유통 수수료가 사라져 거래 비용이 제로(0)가 되는 반면 정보는 더욱 투명해지는 초유동성 시장이 일반화되면 전통적인 시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던 산업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결국은 산업 내 중간 과정, 즉 산업 내 가치사슬 최소화된다. 시장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중개 비용이나 유통 수수료가 사라지고 최소한의 시간에 최적의 가격으로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수퍼플로이드 혁명이다.

최재원
EY산업연구원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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