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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묻고 또 물으라” 정신 빈궁한 시대 되새겨야할 화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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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호 26면

[금강 스님의 ‘달마산 편지’] ① 법정 스님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 달마산 자락에 있는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의 ‘달마산 편지’ 연재를 시작한다. 20세기 국내외 선(禪) 스승의 일화를 통해 감로수 같은 지혜의 세계를 한 달에 한 번 펼쳐 보일 예정이다. 첫 순서는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이다.

“가진 것 많으면 그 뜻을 잃는다” #선지식인의 ‘무소유’ 가르침 #복잡한 현대를 사는 지혜 얻어 #석가모니처럼 수행은 짧고 #민중 위한 보살행 시기는 길어 #글쓰기와 언행일치의 삶 실천 #“내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 #하루빨리 장작불에 들어가는 거야” #입적 이틀 전 법문 눈에 선해

전남 순천시 송광사 내 불일암 입구.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17년간 수행하며 산문집 무소유를 펴낸 곳이다. 한 학승이 법정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있다.

전남 순천시 송광사 내 불일암 입구.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17년간 수행하며 산문집 무소유를 펴낸 곳이다. 한 학승이 법정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있다.

겨울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에 하얀 눈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지난 가을 나무들이 떨어뜨린 낙엽들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걷는다. 평화로움과 충일한 행복감으로 가득한 희열을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느낀다. 이 길에는 7년 전 한 스님의 다비장에서 다 타버린 재 한 움큼 들고 와 곱게 묻었던 나무가 있다. 소년 시절 방황하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말과 침묵』이라는 책을 쓰신 법정 스님을 늘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다.

달마산에는 1270년 전부터 사람들이 걸었던 오래된 길이 있다. 인도에서 찾아온 불상과 경전을 검은 소 등허리에 싣고 걷던 길이고, 소림굴에 9년 면벽하다 해동으로 떠난 달마를 찾던 길이다. 제비집처럼 산에 깃들어 살던 열두 암자 스님들이 법담을 나누던 수행의 길이다. 산골 마을 사람들이 장 보러 가던 생활의 길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산도 절도 사람들도 쇠락했던 시절 이 길 또한 묵은 길이 되어버렸다. 겨우 그 흔적만 남은 길을 찾아 ‘달마고도’라는 이름을 찾아준 게 작년이었다. 그동안 물 흐르듯 살아온 내가 이 길 만드는 과정에서는 제법 고집을 부렸다. 현대의 장비와 도구를 동원하여 옛길을 복원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 길상사에서 법문하던 생전의 법정 스님. [사진 금강 스님]

서울 길상사에서 법문하던 생전의 법정 스님. [사진 금강 스님]

천 년이 넘는 절집에 살다 보면 지나온 천 년을 생각하고 이후의 천 년을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호흡이 생긴다. 편리한 소재보다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를 써야 하고, 조금은 불편해도 주인이 아닌 객의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로 250일 넘게 흙과 돌로 채우며 길을 만들었다.

나만 홀로 걷기 위한 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함께 걷는 행복한 길이기를 소망하며 만들었다. 그러나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누구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걸을 수는 없다.

불일암 섬돌 위에 놓여있는 법정 스님의 흰 고무신 한 켤레. [사진 금강 스님]

불일암 섬돌 위에 놓여있는 법정 스님의 흰 고무신 한 켤레. [사진 금강 스님]

풍요로움이 가득한 시대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만큼 풍족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그 풍요로움의 조건들이 개개인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이런 풍요로운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인간이고,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 스스로 물으라 / 나는 누구인가 /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날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 귀속에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그러나 묻지 않고는 그 해답을 이끌어 낼 수 없다. / 나는 누구인가 / 거듭 거듭 물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글과 글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금강 스님]

법정 스님의 글과 글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금강 스님]

법정 스님이 남긴 온전한 삶을 위한 화두이다. 내가 만든 나를 떠날 때 비로소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물질은 가장 풍요롭지만, 정신은 가장 빈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시대까지 오면 인간의 기능적인 능력은 볼품없어지고, 개인주의는 극대화되면서 그 차별과 갈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땅끝마을 산중에 사는 한낱 비구인 내가 세상을 향해 마음의 편지를 띄우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적은 물질로 가장 큰 정신적 삶을 사셨던 선(禪) 스승들의 삶 속에 현명한 답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선지식은 법정(1932~2010) 스님이다. 선승일 뿐만 아니라 수필가, 자연주의 사상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했다. 산속 오두막에 살면서 30년 넘게 한 달에 한편의 글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법정 스님이 남긴 책을 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유언에 따라 모든 책이 절판되어 헌책방에서 구매하다 보니 한 권씩 우편으로 배달받는 데 시간이 걸렸다.

출가하기 전 읽었던 『무소유』와 『서있는 사람들』, 고등학교 시절 늘 음미하던 그 『말과 침묵』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절판된 책이 33권, 새롭게 출판된 법정 스님 관련 서적이 30권이나 나왔다. 모두 구매해서 책꽂이에 꽂으니 작은 책장의 세 칸 가득하다.

스님이 입적 이틀 전 마지막 길에서 보여주신 법문이 눈에 선하다.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빨리 몸 벗어나서 하루빨리 다비장 장작불에 들어가는 거야.” 유언대로 그 어떤 수식어도 없는 ‘비구 법정’이라고 쓴 종이 위패와 대나무 평상에 입던 옷 그대로 누운 육신에 가사를 덮은 운구가 장작불에 타올랐다. 그 모습은 최근 그 어떤 선사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철저한 수행자의 법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언행일치의 삶을 살다간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 또한 대중들에게 말과 글로 표현한 것들과 내 삶이 같은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서늘한 그 ‘비구’라는 글귀가 나의 계율이 되었다.

출가 수행자를 다른 말로 ‘비구’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에서 음으로 옮겨진 말인데 그 뜻은 거지(乞士)다. 인도에서 모든 수행자는 전통적으로 음식을 탁발에 의해 얻어먹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일반 거지와는 달리 빌어서 먹으면서도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밖으로는 음식을 빌어 육신을 돕고, 안으로는 부처님의 법을 빌어 지혜 목숨(慧命)을 돕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와 같은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이 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옛날과 한결같을 수 없는 것은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앞에서라도 그 근본정신을 잃는다면 수행자의 존재의미는 사라지고 만다며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가난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반드시 그 뜻을 잃는다’는 옛 스승의 글귀를 비구 법정은 늘 품고 살았다. 사실 출가한 비구만이 얻어먹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연에서 얻어먹고 산다. 어느 것 한 가지 고정된 실체가 없이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다. 겸손하게 세상에 깃들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으며 그 시대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는 곧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번역한 책 『불타석가모니』 서문에 쓴 글이다.

법정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수행의 시기는 짧고, 보살행의 시기는 길었다. 출가하자마자 선(禪)의 큰 스승인 효봉 스님으로부터 선 수행을 배웠고, 교학의 큰 스승인 운허 스님의 부탁을 받아 팔만대장경 역경과 불교사전, 불교성전의 책임 편찬까지 하였다. 식민지시대와 해방, 미군정과 6·25전쟁의 격변기를 경험하며 출가를 단행했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철저한 수행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선과 교학 수행 이후에 다시 만난 사회 속에서 1973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철폐, 개헌서명 운동의 참여가 당시 한국사회 대다수 민중을 위한 보살행이었다. 그러나 그 사회참여적 보살행은 1975년 민혁당 8명 청년들의 사형집행이라는 충격으로 멈춘다. 이 사건이 차별적 보살행에서 평등적 보살행으로 확대되는 대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산중으로 내려왔지만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글쓰기와 언행일치의 삶이 그것이다. 인연에 따라서 송광사 수련원장이나 ‘맑고 향기롭게’ 결성이나 길상사 창건과 같은 일을 물 흐르듯이 받아들이고 놓고를 하였다.

청년 법정은 출가를 허락받고 하루 만에 삭발한 뒤 기분이 좋아 종로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그 자유롭고 시원한 발걸음을 마을 길이라도 걸으며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금강 스님 해남 미황사 주지.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 상임대표. 열 일곱살에 출가, 대흥사·해인사·양사 등에서 공부했으며, 실직자단기출가수련회·무문관·참사람의 향기·템플스테이 등에서 20년간 선 수행 지도. 틱낫한, 툽텐가쵸, 노먼 피셔와 같은 외국의 선 스승들을 한국에 소개했다. 저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물 흐르고 꽃은 피네』

타성의 늪을 떨쳐버리는 것이 출가 정신

나는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행이 가능하겠는가. 홀로 살면서도 나는 아침저녁 예불을 빼놓지 않는다. 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흐트러진다.

우리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요구하는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타성의 늪에서 떨치고 일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저마다 자기의 일상생활이 있다. 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거듭 떨쳐 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정신이 필요하다.

-법정 스님의 글 ‘날마다 출가하라’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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