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의 남자' 연설문 작성 전담 26세 브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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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5일 자카르타에서 대학생·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연설한 뒤 자리에 앉아있다. [자카르타 AFP=연합뉴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에겐 '비밀병기'가 있다. 크리스천 브로즈(26.사진)라는 청년이다. 라이스의 연설은 그의 손끝에서 나온다.

2004년 12월의 일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서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라이스는 상원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국무부 연설문 작성팀을 백악관으로 불러 회의를 열었다. 외교정책에 대한 의견과 청문회 대책 방안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회의는 처음엔 산만하게 진행됐다. 라이스는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했다.

그때 브로즈가 나섰다. 좀 수줍은 표정으로 손을 든 그는 라이스가 강조해야 할 정책과 청문회 때 해야 할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의견을 밝혔다. 브로즈가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회의가 끝난 뒤 라이스는 측근 짐 윌킨슨에게 "빨강 머리의 저 젊은이를 주목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라이스가 국무부에서 일을 시작하자 브로즈는 바빠졌고, 스타가 됐다. 그런 그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14일 "할리우드의 스타 탄생과 비견된다"고 썼다. 윌킨슨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브로즈는 감수성이 뛰어나 누구보다도 라이스의 목소리를 잘 담는다"고 말했다.

브로즈는 연설문에서 라이스의 인생과 미국의 정책인 '민주주의 확산'을 자주 연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흑인여성인 라이스가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자랄 때의 얘기를 하면서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 청중에게 잘 먹힌다는 게 브로즈의 판단이다. 라이스가 외국을 방문할 때 그를 반드시 데려가는 까닭도 외국 지도자를 만나거나 설득할 때 이러한 감수성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브로즈는 2002년 케년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잡지사에서 일하다 2004년 국무부에 들어갔다. 그는 "국무부로 처음 출근하던 날 로비에 죽 걸려 있는 각국의 국기를 바라보며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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