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쟁 외치다 평등에 빠진 교육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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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 관료 출신인 김 부총리는 자율경쟁.시장원리를 매우 중시한다고 한다. 그는 경제부총리 시절 여러 차례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주장했다. 지난해 12월에도 교육 부총리로서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거론하고, 청와대.여당 내에서 '자립형 사립고=귀족학교'라며 반대하자 김 부총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군자표변(君子豹變)하는 김 부총리의 모습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가 2008년 입시에서 통합 논술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자 김 부총리는 환영했다. 그러나 며칠 뒤 노 대통령이 서울대 발표를 '나쁜 뉴스'라고 말하자 김 부총리는 확 변했다. 올해는 대학들에 "2008년 입시에서 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을 높이고, 논술 비중을 낮춰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논술 비중을 높이면 본고사로 변질되고,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김 부총리는 "따르지 않으면 행.재정 제재를 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입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던 김 부총리와는 대조적이다.

교육 문외한인 김 부총리가 지난해 교육 수장이 됐을 때 많은 언론은 환영했다. "교육 개방으로 경쟁력을 키우자"는 주장까지 했던 그였기에, 획일적인 평준화 논리에 빠져 있는 교육계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노 대통령이 김 부총리에게 교육을 맡긴 뜻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취임 1년2개월쯤 된 지금, 김 부총리가 그동안 한 것이 무엇인가. 교육개혁의 기수보다는 오히려 정권의 뜻에 맞춰 오락가락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시절 "사립학교 규제 완화 등으로 서비스 업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던 그가 지금은 사학 법인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개정 사학법을 열심히 옹호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김 부총리는 "대학의 서열화는 경쟁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열화까지 인정한다면 당연히 대학 입시에서 대학별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 평준화를 강조하는 현 정권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 이러니 말로는 경쟁을 외치면서 행동은 평등화로 가는 갈팡질팡한 행보를 하는 것이다. 교육 부총리 취임 전과 취임 후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본인의 해명도 없다.

백년지계인 교육은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보신책 때문에 희생될 수는 없다. 교육 수장은 무엇보다 뚜렷한 교육철학을 갖고, 장기적인 교육정책을 펼쳐야 한다. 김 부총리의 지금까지 행동은 실망감만 줄 뿐이다. 이제는 "정권과 코드를 맞출 것이 아니라 철학에 따라 교육정책을 펼쳐라"는 주문을 하기도 지쳤다. 과거에도 자신의 교육철학을 지키려다 퇴진당한 교육 수장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