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 총리의 사퇴와 공직자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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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총리의 낙마는 고위공직자의 처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총리가 물러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골프다. 그러나 그것만이었다면 민심이 이렇게 들끓지 않았을 것이다. 총리라고 해서 골프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총리 측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총리가 보인 처신에는 국민이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첫째, 시점이다. 휴일이라고는 하나 물류대란을 예고하는 철도파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더군다나 일반 시민들도 옷깃을 여미는 3.1절이었다. 이런 날 지방 골프장에 내려간 것은 고위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다.

둘째, 오만이다. 이 총리는 이해하기 힘든 부적절한 골프를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군부대에서 오발사고로 희생된 수십 명의 빈소를 조문하기 직전에도, 강원도에서 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집중 호우로 남부지방 수많은 주민이 눈물을 흘릴 때도 이 총리는 골프장에 있었다. 심지어 그는 이런 일로 "근신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고도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부적절한 상대다. 이 총리가 이번에 함께 골프를 한 기업인 중에는 가격 담합과 주가 조작 의혹을 받아 정부 기관의 조사를 받는 사람이 끼어 있었다. 그 모임을 주선한 사람이 누구이건 호가호위의 부작용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상대를 가려야 할 책무가 있다. 더군다나 이 총리는 의원 시절 브로커 윤상림씨와 골프 회동한 일로 로비 의혹까지 받고 있던 처지다. 그런데도 야당 의원에게 "놀아나지 않았다"고 큰소리 친 바로 다음 날 또다시 부적절한 상대와의 골프를 절제하지 않은 것은 오만의 극치라 할 것이다.

넷째, 부정직성이다. 각종 매체에서 연일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부인과 번복을 반복해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런 처신으로 고위 공직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 고위 공직자, 특히 총리란 자리는 일만 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평소 처신에서도 근신하는 덕목을 갖춰야 한다.

이 총리가 물러나도 이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골프 모임과 관련해 로비가 있었는지, 관련 기업의 주가 조작과 공정거래위의 처분에 누가 개입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검찰은 더욱 엄중히 수사해 사실 관계를 가려내고, 범법 사실이 드러나면 누구든지 의법 처리해 공직 기강을 다잡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총리는 역대 어떤 총리도 갖지 못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다. 이 총리의 사퇴로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저출산 고령화 대책, 국민연금 개혁 등 어려운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럴수록 정치 총리가 아닌 민생형 전문가를 기용해 공정한 선거 관리는 물론 국정의 공백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