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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南南갈등 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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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 참 석 자

▶제성호 중앙대 교수

▶한충목 통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사회=중앙일보 통일문화硏 안희창 북한네트팀장

지난달 31일 폐막된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는 '8.15 북한 인공기 소각사건'과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표명, 대회기간 중 벌어진 보수진영과 북한 기자단의 충돌 등을 둘러싸고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대립돼 있음을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지난 1일 이번 사건에 대한 보수.진보진영의 시각과 남남(南南)갈등의 극복방안 등을 살펴보는 긴급토론회를 마련했다.

▶사회=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는 개막 전은 물론 대회기간 중에도 보수진영과 북한 기자단이 충돌하는 등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이는 결국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과연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金=우리 사회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같은 민족이면서도 타도해야 할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의식 속에는 북한에 대한 동포애와 적개심이 혼재돼 있어요. 심지어 북한 주민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옳지 않아요. 북한체제를 지지하고 칭찬하자는 게 아니라, 일단 인정하고 이해하자는 거예요. 또 그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諸=김정일 정권은 독재정권이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부자(父子)세습체제입니다. 또 북한은 계급사회예요. 정권수립 과정을 보더라도, 정통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2천2백만 북한 주민들은 독재정권 밑에서 억압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점들만 보더라도 김정일 정권은 청산돼야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 무력을 통해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제한적인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김정일 정권이 통일 협상의 파트너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평화관리 내지 평화공존 대상이죠.

▶韓=분단 이후 지난 50여년간 우리 사회에는 보수의 목소리만 있었습니다. 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7.7선언'을 발표한 이후 북한을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죠. 북한을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동반자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바람직한 추세지요. 그동안 대결과 반목으로 일관해 온 시대정신이 화해와 협력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김정일 정권의 속성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할 것 같아요.

▶申=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주민 3백여만명이 기아로 굶어죽고, 20여만명이 아직까지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는 것만 봐도 김정일 정권은 타도 대상입니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군사정권 타도를 주장했던 사람들을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인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왜 북한의 독재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수구세력'이라고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회=보수진영의 행동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잇따라 유감을 표명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는데요.

▶諸=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 선수단이 참가했음에도 남남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 기간 중에는 보수와 진보세력이 첨예한 갈등을 빚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盧대통령이 국가의 위신을 생각지 않고, 남남 갈등의 한복판에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盧대통령은 진보진영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정부는 갈등의 조정자 내지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韓=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정서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대회 개최지인 대구 시민의 정서가 매우 중요했지요. 盧대통령이나 李장관, 조해녕 대구시장의 유감 표명 등은 모두 국민과 대구 시민 정서를 반영한 것입니다. 게다가 유니버시아드대회 국회 지원 특별위원장인 한나라당 김일윤 의원조차 보수세력의 과격행동을 비판한 것은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申=보수진영의 기자회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李장관의 처사는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입니다. 우리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가 명시돼 있어요. 그럼에도 이를 문제삼은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한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金=盧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보다 통일부 장관이나 조직위원회 차원에서 대응했어야 했어요. 하지만 남북 대결 상황에서 보수진영이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金위원장의 사진이 걸린 플래카드 수거 소동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金=남북의 문화적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봐야지요. 북한에 대한 학습효과는 매우 컸다고 봅니다.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통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諸=북한 주민들의 사고가 닫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단순히 통일을 노래하고, 남북이 교류하는 것만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습니다. 6.15선언 이후 감상적.낭만적 통일 열기가 달아오른 느낌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분위기는 가라앉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북한 응원단의 언동과 관련, 보수 일각에선 '정치적 의도'가 내포됐다는 견해도 있는 것 같아요.

▶韓=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이기 때문에 '미녀응원단'이 온 게 아닙니까. 국제행사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보려는 북한의 노력마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한마디로 '분단병'입니다.

▶諸=북측이 '미녀 응원단'을 내려보낸 것은 남한 내의 반북(反北)적 분위기를 약화시켜 민족대단결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경제협력과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어요. 이를 위해 미녀 응원단을 매개체로 활용한 것이죠.

▶申=언론이 지나칠 정도로 '미녀 응원단'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은 문제입니다. 이런 자세는 앞으로 반드시 시정해야 합니다.

▶사회=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인적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데, 바람직한 인적교류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金=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교류와 협력밖에 없습니다. 진보세력은 보수세력에게 북한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북한에 가서는 북측 사람들의 경직된 사고를 비판해요. 보수세력이 북한을 방문해 현실을 직접 보면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질 것으로 봅니다.

▶韓=북한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잣대만으로 북한을 재단(裁斷)해서는 곤란해요.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물자도 가고, 사람도 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열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諸=북한은 엄연한 왕조(王朝)체체인데, 어떻게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들의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남과 북의 유사한 가치를 서로 수용함으로써 공감대를 확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도 변해야 하지만, 북한이 더 많이 변해야 합니다.

정리=이동현 기자

<사진 설명 전문>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 중 발생한 보수진영과 북한기자단의 충돌사건 등에 대해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한충목 통일연대 상임집행위원장.제성호 중앙대 교수.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신혜식 독립신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