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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아침] ‘톡 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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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톡 톡’- 류인서(1960∼ )

그 여자는 매니큐어 바르기를 좋아한다 올 터진 스타킹 갈라진 손톱 찢어진 나비날개 분홍빛 벌레구멍 솔기 끝 어디에든,
손가락만한 매니큐어를 만지작거리며 그 여자는
금간 애인과의 사이를 어떻게 메울까 한동안 훌쩍거리다

고양이처럼 달랑 의자에 올라앉아 엄지발톱에 톡, 톡, 매니큐어를 바른다
그래, 톡 톡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겠다

톡톡, 메밀밭 메밀꽃이 하얗게 귀 트이는 소리
톡톡, 호박잎 위에서 배꼽달팽이 발가락 펴는 소리
톡톡톡, 등푸른 오이가 칼날 위를 뛰어가는 소리
톡톡, 끝여름밤 귀뚜라미망치로 휘어진 철길 두드리는 소리
톡톡, 글자 위를 기어가는 칠점무당벌레 오자탈자 골라내는 소리
톡톡, 소라고둥이 버얼건 폐선 밑바닥에 붙어 심해를 노크하는 소리

이제 울음 그쳤니?
톡톡, 구름이 눈썹창 여는 소리


이 시인은 빛깔을 어쩌면 이렇게 소리로 살짝 살짝 잘 바꾸어 놓았을까. 연상의 묘미가 있다. 눈에 선홍빛이 선하다. 나는 매니큐어를 발라 본 적이 없지만, 그 일은 아주 신이 나는 일이 될 것 같다. 영혼이 가벼워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잔가지를 흔들어 놓으며 포르릉, 포르릉 몸이 작은 새들이 날아오를 것 같다. 그참 이쁘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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