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심문은 검사만 맡아 "전관예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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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낙제점수는 면했다>
전경환씨의 구속 수감과 동시에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시민들로부터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무척 홀가분한 표정들.
대검의 한 간부는『그 동안 대형사건의 수사결과발표 때마다 시민들로부터 비난·항의전화가 빗발쳤으나 이번에는「수고했다」는 전화가 많아 큰 다행』이라고 자화자찬.
그는 또『그 동안의 수사는 기본적으로 그 결과를 믿지 않으려는 불신풍조가 국민들 사이에 깔려있어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번에는 그런 풍조가 없더라』며 희색이 만면.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이종남 검찰총장은 31일 낮 수사에 참여한 검사전원과 점심을 함께 하며 이들을 격려한 뒤 『금주 말까지는 휴식을 하고 다음주부터 다시 수사를 재개하라』 고 지시.
그러나 재야의 한 변호사는『이번 수사결과는「낙제점이상 합격점미만」으로 보면 정확하다』고 평가.

<측은한 생각 들더라>
전경환씨를 소환한 검찰은 이틀간의 철야 수사과정에서 다른 피의자 조사와는 달리 검사들만 신문할 수 있도록「전관예우」.
이 때문에 과장(부장검사)·검사·수사관등 3명이 한 팀을 이루었지만 수사관은 조서작성을 위한 타자수 노릇만 했을 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는 것.
전씨는 소환 첫날에는 점심을 굶는 등 식사를 손도 대지 않다가 이튿날에는 설렁탕을 밥알하나 남기지 않은 채 국물까지 모두 마시는 등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는 후문.
한 수사관은 전씨가 소환 첫날인 29일 점심으로 주문해온 매운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그날 저녁때는 목이 타는 듯 설렁탕을 국물만 마시더니 30일 아침부터는 밥그릇을 모두 비우더라고 부언.
30일 함께 식사를 했다는 한 수사관계자는『내가 3분의1쯤 먹었을 때 전씨는 이미 밥그릇을 비우고 앉아 있어 측은한 생각이 들더라』고 말하기도.

<공금 사금 구별 못해>
전씨 측근들은 애당초 새마을본부나 전씨가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탓인지 장부정리에 허점을 노출.
이들은 공식장부와 비밀장부를 완전히 분리시켜 정리하지 않고 일부 항목의 입출금이 두 장부에 걸쳐 기재되는 등 무모하리만큼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
이에 대해 검찰은『전씨가 공금인지 사금인지 구별을 잘 못하는 것 같더라』며 앞으로 법정에서 횡령사실은 모두 시인하더라도 범의를 가지고 많이 다룰 것 같다고 예상.
한 검찰간부는 횡령이 분명한 사실에 대해서도 전씨는『그 돈을 쓴 게 무슨 죄가 되느냐』고 되묻기 일쑤여서 오히려 수사하는 쪽이 가슴을 칠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이 때문에 검찰은 65억 원의 횡령을 밝혀내고도『횡령죄 구성요건인「불법획득의 의사」 와는 거리가 먼 것도 있다』고 오히려 전씨를 동정.
검찰은 지도자육성재단기금 46억 원이 영종도개발에 전용된 것을 밝혀낸 뒤 형사처벌문제를 놓고 고심하다 서울검사장까지 참석한 확대수사관계자회의까지 열어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

<측근 진술 모두 시인>
전씨는 출두직후 수사관계자들에게『보도 때문에 출두 3일전부터 잠도 설치고 식사도 못했다』며 휴식을 요구, 한참 휴식을 취한 뒤 조사에 응했다는 것.
전씨가 처음 범행을 부인한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르며 전씨는 모든 것을 대체로 시인했다는 게 수사관들의 말.
다만 전씨는 수치개념이 어두워 액수·계수·날짜 등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는 것.
전씨는『기억 안 난다』『모르겠다』는 식으로 가볍게 부인하는 진술을 하다가도『부하가 그렇게 말했다면 나도 시인하겠다』면서 측근들이 진술한 내용은 모두 받아들였다고.
전씨는 새마을신문사외 탈세부분을 추궁하자『이익금이 많은 탓인지 세금을 내려고 보니 다른 손꼽히는 일간지보다 세액이 훨씬 많아 줄이도록 한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내용 누설 땐 책임" 엄포>
검찰은 수사착수당초 공개수사방침을 자신 있게 밝혔으나 수사관계자들에게는 일체 함구령을 내리고「입」을 단일화하는 편법을 사용.
특히 전씨의 진술태도·내용 등 전씨 관련부분에 대한사항이 보도진에게 알려질 경우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까지 놓았었다는 것.
이에 대해 검사들 사이에서는『이러한 태도는 검찰의 수사성역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과 함께『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씨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이 대두되기도.

<전씨 관련부분 함구>
22일부터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아오던 문청, 정장희씨 등 전경환씨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개인범행에 대해선 쉽게 자백하고서도 전씨 관련부분은 함구로 일관하는 등「의리」를 과시.
이들은『회장님 관련부분은 전혀 모른다』며 수사관들의 끈질긴 추궁에『나를 빨리 구속시켜달라』고 요청까지 했다는 것.

<황씨 세 차례 자살기도>
조사를 받던 중 두 차례 자살기도를 한 황흥식씨는 사실 세 차례 자살을 기도했었다는 것.
황씨는 30분쯤 자백 한 뒤 2시간 여씩「통곡」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볼펜으로 왼 손목을 찌르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일을 벌였다는 것.
황씨를 수사했던 한 수사관계자는『묵비권을 행사하던 황씨가 갑자기 비실비실 웃으며 「이것도 알려드릴까」「저것도 알려드릴까」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덕을 본 셈이었다』고 언급.

<테러를 당할 것 같다>
새마을사건과 관련, 구속된 정장희씨는 검찰조사과정에서 수시로『자살할 것이다』 『테러를 당할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흘려 수사관계자들이 수시 긴장했다는 것.
정씨는 새마을비리를 상당부분 자백한 뒤『그들에게 칼침을 맞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또『출옥한 뒤 1개월 안에 자살할 것이다』고 자신감(?)에 찬 어조로 자주 말했다는 것.

<3-4명은 집행유예 점쳐>
전씨의 구속수감사실이 보도된 31일 낮 신문사에는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쳐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를 반영.
전화의 대부분은『왜 전경환이라고 하지 않고「씨」자를 붙이느냐』『사형을 시켜야 하는데 최고형이 무기라니 말도 안 된다』는 등 감정적인 내용들.
한편 검찰관계자는 전씨에게 어느 정도의 구형 량이면 알맞겠느냐고 여론을 묻는가 하면 『징역10년∼15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대답에는『너무 가혹하다』고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이 관계자는 그러나 전씨와 함께 구속된 8명중 3∼4명은 들러리이기 때문에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라고 점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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