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뼈저린 교훈 얻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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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시대를 흔들었던 새마을 회장 전경환씨와 그의 일당 8명이 구속되는 광경을 보는 국민의 심정은 시원하다기 보다 착잡한 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열릴 때마다 어제의 세도가가 쇠고랑을 차고 하루아침에 급전 직하, 몰락하는 악순환이 거듭되어야만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큰 사건을 수사할 때면 으레 독자적인 수사를 못해 국민의 빈축을 샀던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그런 대로 명예회복을 한 셈이다. 수사 착수 겨우 10일만에 철옹성 같던 「성역」을 허물고 피의 사실 11건에 공금 횡령 등 78억원을 들추어냈다.
그러나 이번 수사 결과를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만족한 수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자그마치 7년간에 걸친 갖가지 부정과 비리가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국민의 시각도 있다.
전씨가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청탁과 압력을 종횡무진으로 행사해 왔는데 그에 의한 금품수수는 겨우 2건에 2억 4천여만원에 불과했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권력형 부정의 전형은 청탁과 압력, 이권 개입 등이고, 거의 예외 없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게 마련이었다. 전경환씨의 경우는 이권 개입 2건 외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혐의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 기간이 워낙 짧았고 미진한 부분은 앞으로 보강 수사를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새마을 부정이 벌써 오래 전부터 온 세상이 수군거릴 정도로 파다했는데 유독 검찰만이 모르는 체 하고 방치해 왔다는 것이다. 수사가 지연될수록 피의 사실의 핵심이 흐려지고, 피의자가 증거를 감추려 드는 것은 정한 이치다.
신문이 제기한 17가지 비리에 대해 검찰는 그 동안 『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말을 했었다.
그 사이에 전씨가 일본에 잠입했던 사실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수사당국이 뒤늦게 그 정도라도 밝혀낸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검찰은 앞으로의 수사에서 국민이 웬만큼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수사 결과만이라도 최종 발표 때까지는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는 권력형 부정의 형사 책임을 묻는 사법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 마음속에선 나라의 도덕성을 이토록 타락시키고 국민을 실망하게 만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아직도 유예 상태로 놓아두고 있다.
이번 새마을 사건을 통해 우리는 거듭거듭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권력의 독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고 권력자의 주변 관리가 얼마만큼 중요한가도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불과 며칠전까지 만해도 하늘을 찌를 듯 한 권세를 부리던 전씨가 시민으로부터 더 없는 모욕을 당하고 쇠고랑을 차며 「농군의 아들로 분수를 몰랐다」는 전씨의 참회에서 많은 공직자들은 뼈저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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