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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물어달라" MB 모호한 화법 속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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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물어달라”…MB 발언 놓고 전ㆍ현직 검사들 해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대상이 검찰인지 청와대인지 모호 #"MB 특유의 모호한 화법" 해석도 #수사망 좁혀오기 전 '선제 공격' 분석 #"불리한 발언될까 전전긍긍하기 마련"

이명박(77ㆍMB)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발표한 성명서 말미에 읽은 문장이다. (당초 언론에 배포된 성명서에는 마지막 문장이었지만, 이 전 대통령이 다음 달 열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 관련 덕담을 즉석에서 추가했다) 이 전 대통령 역시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나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측근들 대신 나를 직접 수사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정작 ‘물어볼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물어보라는 것인지는 불분명한 화법을 구사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된 채 단순히 “나에게 물어달라”라는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진의와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직 검사와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이 전 대통령이 읽은 이 날 성명은 나름의 계산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 목전에 와 있는 검찰 수사를 앞두고 패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모호한 정치적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단 의미다.

한 전직 지검장은 ”발언 대상이 수사 중인 검찰인지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모두 겨냥한 것인지 모호한 화법을 구사했다“며 “불필요한 말을 줄임으로써 여지를 남기는 MB 특유의 화법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MB는 전날 성명서에서 현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다스 수사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나에게 물어라’는 말은 불안함과 자신감이 동시에 들어있는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표면적으론 측근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수록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이 나올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이면엔 법적 검토 결과 과거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관례적으로 정부부처나 기관의 특활비를 받은 것을 뇌물로 의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도 “법률적인 책임인지 그보다 더 포괄적인 정치적 책임인지 성명서만 봐서는 명확한 해석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 후보로 나선 이회창(왼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두 사람 모두 검찰 수사를 받기 직전 "나에게 물어봐달라"는 성명서를 내고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다. [중앙포토]

2002년 대선 당시 후보로 나선 이회창(왼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두 사람 모두 검찰 수사를 받기 직전 "나에게 물어봐달라"는 성명서를 내고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다. [중앙포토]

전날 성명이 현재 구속됐거나 곧 검찰 조사 가능성이 있는 측근들에 대한 MB의 ‘메시지’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 전직 검사장은 “세간에서도 이번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보는 시선이 있으니 힘을 모아 집결하자는 뜻을 담았을 것”이라며 “리더인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줌으로써 청와대 스태프를 비롯한 참모들은 안심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과거 정권 수사에 부정적인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나선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특수부 검사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소환자들을 통해 수사가 어딜 향하는지, 어디까지 확인됐는지 파악하려 하지만 바깥에서 검찰의 전략을 가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정치인들의 경우 본능적으로 정치 보복이나 탄압 프레임을 짜면서도 실제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 불리할 수 있는 발언은 최대한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수사 선상에 오른 정치인들은 미리 패를 보여줬다가 오히려 검찰이 짜놓은 덫에 빠지는 게 될 것을 가장 우려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기 전 미리 ‘선제 타격’을 함으로써 수사를 흔들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른 전직 검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검찰 수사가 길어질수록 수사를 받는 쪽이 불리한 게임일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의 상황악화를 막는 동시에 적이 나를 공격하기 전 선제 대응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말했다. 지검장 출신 변호사는 “‘박연차 게이트’ 때와 비교하더라도 당시엔 실제 돈이 움직인 물증이 있었지만 현재 MB 수사는 사람의 입에만 의존하는 것 같다”며 “성명서에서 ‘정치 공작’, ‘노무현’ 등을 언급함으로써 검찰을 향한 경고를 분명히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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