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전직 간부 "대공수사이관, 코끼리급 경찰을 공룡으로 비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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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정보원 직원이 국정원 건물 안에 서 있다. 기사와는 상관 없는 사진이다. [중앙포토]

한 국가정보원 직원이 국정원 건물 안에 서 있다. 기사와는 상관 없는 사진이다. [중앙포토]

“국정원은 유능한 칼이다. '칼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지 칼(국정원)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1970년대 말부터 국가정보원에서 30년간 일한 전직 간부 A씨의 말이다. 그는 국정원에 있는 동안 대공(對共)수사만 담당할 정도로 이 분야에 잔뼈가 굵다. 말 그대로 ‘간첩 잡는 일’이 천직이었다. 청와대가 14일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안에 따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경찰로 넘어간다. 이에 대해 그는 "코끼리급이던 경찰이 갑자기 공룡급으로 비대화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가져가는 것이 왜 우려스럽나.
“대공 수사는 해외·대북·과학 정보가 총동원 된 산물이다. 하나만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실무에서 대공 수사를 해보면, 국정원 대북·해외 업무 파트에서 보내온 정보가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그 파트에 다시 정보를 요청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간첩 침투 양상이 다양해진 시점에서 이런 원활한 정보 교류는 더 중요해졌다. 이제는 바로 휴전선을 넘어오기 보다는 해외를 거쳐 우회 침투를 한다. 한국 사람이나 외국인을 포섭해 간첩 활동을 시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관련 경험이 적은데다 국정원 다른 파트와의 원활한 정보 교류가 쉽지 않다.”

14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4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찰이 국정원과 정보 교류는 할 수 있지 않나.
“실무를 해보면 쉽지 않다. 다른 기관끼리는 절차·형식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보 교류를 할 수 없다. 부담 없이 편하게 교류할 수도 없다. 정보를 보내려다가도 ‘이거 확실한가’란 의구심이 들게 되고, 확실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게 된다. 정보 교류가 그만큼 더뎌 지게 된다는 말이다.”

-대공수사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대공 수사는 꾸준한 첩보 수집이 우선이다. 1~2년 동안 바뀌는 첩보로는 간첩 못 잡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5년이고, 10년이고 암행하면서 정보를 캐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은 보직 인사때마다 보안과, 형사과, 정보과 등을 왔다갔다 한다. 북한이 공작을 허술하게 하겠나. 집요하게, 전념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현재 국내에 정확히 간첩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대공 업무는 오랜 기간의 전문성과 노하우로만 수행이 가능하다.”

-대공수사가 넘어가면 경찰 조직은 어떻게 될까.
“현재도 대공수사는 국정원뿐 아니라 경찰·기무사 등에서도 한다. 다만 경찰은 이적표현물 소지나 찬양고무 같은 단순 사건이 많다. 이런 대공 수사 업무를 통합하자는 청와대 발표 취지는 동감한다. 하지만 발표대로라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과 검찰의 1차 수사권(경제·금융 등 특별수사 제외)이 모두 경찰로 옮겨지게 된다. 코끼리급이던 경찰이 공룡급으로 비대화되는 셈이다. 여기에 현재 국내 정보 활동은 경찰만이 할 수 있다. 대공수사권까지 생겨 정보를 독점하면 경찰은 지나치게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결국 계속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
“대공수사만 전담하는 기관을 만들되, 국정원 산하에 만드는 게 방법이라고 본다. 국정원 내에 외청을 두자는 뜻이다. 그러면 국정원에서 수집한 대북·해외 정보를 원활하게 교류할 수 있으면서도, 기관 특성상 외부 감시가 어려운 국정원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에 외부 관리·감독을 받기 쉬워진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정치 탄압’이나 ‘인권 유린’ 문제들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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