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원점서 재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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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특별활동) 금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동아일보가 15일 보도했다. 앞서 지난 8일 교육부는 학부모들의 반발을 고려해 유치원·어린이집의 영어 교육 금지를 올 하반기나 내년으로 늦춰 적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롯데백화점직장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롯데백화점직장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하지만 14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매체를 통해 “1년 동안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여부와 관련한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근본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며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안건으로 올려 폭넓게 자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철회 가능성도 열어 놓은 셈이다. 교육부는 이번 주에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규제와 관련한 추진 방향을 발표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당초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은 원론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초등학교 1~2학년 정규 수업에선 영어수업이 이미 금지됐고, 올 3월부턴 방과 후 수업에서도 영어 교육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런 만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도 이에 맞춰 영어 교육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원·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초등학교와 똑같이 당장 3월부터 금지하는 방안에 대해선 한발 물러섰다. 지난 8일 교육부 신익현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초등학교에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되는데, 공교육 교육과정을 따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금지해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시행 시기는 현장 의견을 수렴해 3월, 9월이나 내년이 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7일 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밝힌 뒤 한 달도 안 돼 정책이 다시 뒤집어지면서 정부의 설익은 정책 강행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 등은 교육 현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교육 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 교육을 폐지하지 말아 달라는 글이 100건 이상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찌감치 의견 수렴 과정이 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최성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지금도 유치원에선 영어를 놀이 형태로 접근하고 있어 유치원 영어교육을 선행학습이라고 보는 관점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최 국장은 “교육부가 정책을 검토하는 시점이 아니라 다 결정해놓은 상태에서 의견을 묻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 모두 우려하는데 교육부만 추진해야 한다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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