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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격주 '놀토' 현장 두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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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 전북 익산에 사는 이동규(원광고 3)군은 11일 오전 10시쯤 서울행 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7월까지는 아예 주말을 서울에서 보낼 생각이다. '놀토'를 이용해 청담동 논술학원에 다니며 부족한 실력을 다지기 위해서다. 이군은 "올해 상위권 대학 1학기 수시에 지원할 생각인데 익산에서는 토론수업을 접할 수 없다"고 했다.

#2. 같은 날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광주 도평초등학교 심송이(9)양도 친구 여섯 명과 함께 박물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메모했다. 심양은 "쉬는 날이어서 좋긴 한데 오늘 본 것을 가지고 체험 보고서를 써내야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둘째, 넷째 토요일은 수업이 없는 '격주 5일 수업제'가 올해 처음 시작됐다. 대입이나 고입을 앞둔 지방 학생들은 노는 토요일을 이용, 서울 강남학원가로 원정 수업에 나섰다. 당장 시험 부담이 없는 학생들은 박물관이나 시골 친척집을 찾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격주 5일제 수업이 시행된 첫 토요일, 현장을 돌아봤다.

학원 학습
12일 서울 대치동 P학원의 특목고 진학 주말반 특별강좌에 중학생 100여명이 몰렸다. 이 중 10% 정도가 지방 학생이었다. 김성룡 기자

스타 강사 지방서 모셔가기도

#1

1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 대치동의 유명 논술 전문 C학원. 잘나가는 스타강사인 이모씨가 2004학년도 연세대 논술 문제인 '웃음의 사회적 기능'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10여 명 중 3명은 토요 휴업일을 맞아 일찌감치 경기도 평촌 집을 나선 학생들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강모(명지외고 2년)양은 "두 시간 이상 걸리지만 수준에 맞는 학원을 골라 공부할 수 있어 좋다.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주말마다 서울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지방 학생들의 '놀토 서울행'이 이어지고 있다. 대입 논술 비중이 커지고 중.고교에서도 논술.서술형 등 새로운 유형의 시험 문제가 등장해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에서 학원에 다니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청주에 사는 손모(일신여중 3)양도 강남 대치동 P학원의 특목고 대비 종합반 주말 강의를 등록했다. 손양은 12일 오전 7시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에서 출발했다. 강남 D학원의 '서울대 과정 주말반'에 등록한 김준섭(대전 김천고 2)군은 2학년 중 유일하게 서울대 과정에 들었다. 김군은 "진짜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주말반에 등록했다"고 밝혔다.

학원가도 바빠졌다. 기존의 월.수.금 또는 화.목.토 반과 함께 '놀토'가 낀 주말에는 집중적으로 강좌를 늘려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대치동 P학원 신동엽 원장은 "지난주까지 접수를 받은 결과 100여 명 중 10%가 지방 학생들로 채워졌다"며 "월 1회 놀토에는 학원 옆 호텔을 빌려 모의고사를 치고 합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스타강사들은 주말에 지방강의에 나서기도 했다. 대성학원 논술 스타강사 정찬흠씨는 학기 중에 처음으로 11일 오전 광주로 내려갔다. 정씨는 이틀간 4회의 강의를 마치고 12일 오후 6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대성학원 측은 "일부 지방 학원에서는 교통비를 포함해 2~3배의 웃돈을 얹어주고 서로 모시려고 한다"고 말했다. 종로학원 김용근 평가실장은 "우등생 10~20명을 보낼 테니 특별반을 구성해 달라는 지방교사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원진 기자

체험 학습
새 학기 첫 토요 휴업일인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초등생들이 유물을 둘러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박물관 찾거나 시골 친척집 방문

#2

서울 동작구 남사초등학교 6학년 김다솔(13)양은 11일 토요일 등교를 했다. '놀토(노는 토요일)'지만 부모님은 일을 나가고 집엔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오전 내내 여덟 가지의 직선 막대를 가지고 도형과 각종 모양을 만드는 '가베 수학'을 배웠다. 김양은 "등교한 다른 친구랑 오후엔 서울시립미술관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남사초등학교에서 김양처럼 토요일 등교한 학생은 60여 명.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토요일 특기적성교육으로 로봇 조립이나 종이접기를 가르쳤다. 유선주 교감은 "맞벌이 부부 아이들도 있지만 집에 있으면 심심해 제 발로 찾아오는 아이도 많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수백 명의 초.중.고교 학생이 몰렸다. 이날 전국 국립박물관이 학생들에게 무료 개방한 덕분이다.

서울 용산역에서는 고속철도(KTX)를 이용해 지방에 내려가는 학생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신당초등학교 3학년 장정희양은 "홍성에 친척을 만날 겸 한옥박물관을 찾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양은 사촌인 한지영(창경궁초등학교 5)양의 가족을 따라나섰다. 한양의 어머니는 "학교 수업이 없는데 정희가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해 함께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이준순 장학관은 "토요일 휴업 때문에 갈 곳이 없는 저소득층 학생들도 학교에 가면 무료로 특기적성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시간 보내기식이 아니라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저소득층 학생이 아닌 일반 학생은 월 2만원 정도를 부담하고 강좌를 듣고 있다.

하지만 토요일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인 김미숙(44)씨는 "특기적성 교육 프로그램 중엔 체육이나 음악 쪽의 프로그램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토요 휴무일에 무료로 개방하는 문화 시설이 도심지에만 몰려 있어 이동하는 데 불편이 크다는 불만도 있었다.

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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