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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어떡해요!] 쇼퍼홀릭 키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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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진=김성룡 기자]

☞ 쇼퍼홀릭(shopaholic)=물건을 사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쇼핑중독자

모형 자동차만 100여 개. 없는 장난감이 없다. 필기구도 연필.샤프.야광펜 등 수백 개씩 쌓아뒀다. 필요해서 산 게 아니다. 심지어 갖고 싶어서 산 것도 아니다. 단지 '사고 싶다'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고야 만 것. 한마디로 어린이 '쇼퍼홀릭'이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회사원 김윤주(40)씨는 최근 초등학교 4학년 딸의 서랍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샤프.지우개.필통.수첩.스티커 등이 수십 개씩 들어있었던 것. 심지어 비닐포장도 풀지 않은 새 것도 상당수였다. 김씨는 "아이가 하굣길에 습관적으로 문방구에 들러 사 모았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다섯살배기 주호는 매일 엄마에게 "수퍼 가자"며 조르는 게 일과다. 집 앞 상가 건물에 들러 장난감이든, 군것질 거리든 뭐든 사야 하루가 조용하다. 엄마가 "오늘은 안 돼"라고 거절하면 울고 불고 떼 쓰는 것은 물론 머리를 벽에 부딪치는 '자해행위'까지 한다. 아이의 고집에 번번이 엄마는 무너지고, 그래서 사 모은 장난감이 수백여 종에 달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예은이는 어딜 가도 '사는 것'에만 관심을 보인다. 놀이공원에서나 박물관, 심지어 공연장에서조차 기념품 파는 곳만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른다. 예은이 엄마는 "정작 중요한 프로그램엔 집중하지 못한다"며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어린이들의 쇼핑 중독증에 대해 "우울함이나 불안증을 달래기 위해 쇼핑을 한다는 점에서 원인과 증상이 어른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쇼핑을 하면서 순간적으로 마음이 풍족해지고, 자신이 강해지고 우월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근본 원인은 애정결핍"이라며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 등에서 문제 행동을 보여 병원을 찾는 아이들 대부분이 이런 쇼핑중독 증세도 함께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열등감이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며 "충동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사실 아이들의 쇼핑중독은 부모 책임이 절대적이다. 아이의 즉흥적인 요구를 즉각 들어주는 허용적인 양육 태도가 중독증을 악화시킨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대신 선물이나 외식 등 물질적인 보상으로 순간적인 만족감을 안겨주는 일을 반복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면 아이 역시 빈 속을 물질로 채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쇼핑중독을 고치는 일차적인 단계는 대화다.

신 교수는 "'왜 필요하냐''이걸로 뭐 할거냐''지금 갖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르냐'등을 물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 욕구의 절반은 채워진다"고 말했다. 부모가 버릇을 고치겠다는 성급한 마음에 "무조건 안 된다"는 식으로 완강하게 나가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1주일 뒤에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시간을 버는 것이 좋다.

경제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어린이 경제교육기관인 '아이빛 연구소' 강사 고세영씨는 "우리집 생활비가 얼마니. 네가 쓸 수 있는 돈은 얼마다. 따라서 이렇게 계속 사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아이에게 솔직하게 가정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라"며 "대여섯살 정도의 유아들에게도 이런 설명은 통한다"고 말했다. 또 "초등학생이 되면 용돈(주당 5000원 정도)을 주고 계획을 세워 지출하는 훈련을 시키라"고 덧붙였다.

글=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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