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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아드보카트와 메르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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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해 9월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아드보카트. 그는 아직까지 베스트 11에 대해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파건 해외파건 감독의 마지막 눈도장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근 해외 전지훈련에서 맹활약한 이천수 선수가 '감독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상을 숨겼다는 사후고백은 선수들의 심리상태가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전임 본프레레 감독이 몇 달 걸려서도 못 해낸 일을 그는 몇 주 만에 해냈다. 그의 취임 일성은 "월드컵 4강 멤버라도 정신력이 해이해졌다면 집에서 쉬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데뷔전이었던 이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선수단 소집 때 "훈련장에 차를 몰고 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방 배정도 직접 했다. 11월에는 "해외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선수는 독일에 데려가지 않겠다"며 대표 차출에 난색을 표하는 구단들을 압박했다. 이 같은 강력한 지도력으로 선수들의 눈빛이 불과 몇 달 전과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 결과는 1일 앙골라전까지 9승2무3패의 좋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아드보카트의 리더십은 권위와 카리스마, 추진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도자의 덕목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빠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선 아드보카트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개발독재라는 평가도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바로 이런 지도자였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해 어느 정도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저돌적 리더십만으론 한계가 있다. 계층과 세대 간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조화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지도자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그는 기민당-사민당 대연정의 총리다. 대화와 타협이 없으면 하루도 일을 못한다. 독일 사회가 좌우 균형이 잡혀 있고,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에 좌우가 합의하고는 있지만 기민당과 사민당은 엄연히 정책목표가 다르다. 그래서 메르켈은 우파에게 조금 왼쪽으로, 좌파에겐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얼마 전 취임 100일을 넘긴 메르켈에 대한 독일 국민의 평가는 후하다. 여론조사 결과 업무수행 만족도는 80%에 달한다. 그의 취임 이후 독일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있고, 경기도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 정상회담 때 회원국 간 이해가 엇갈리던 차기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그는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1월엔 미국을 방문해 이라크 전쟁으로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회복했다. 이어 러시아로 날아가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했다. 그러면서도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요구하고, 체첸사태를 언급하는 등 할 말은 했다.

물론 그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전임 슈뢰더 정권이 2020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키로 결정한 것을 놓고 벌써 티격태격이다. 그러나 메르켈이 특유의 리더십으로 경제와 환경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타협을 이끌어낼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우리는 발전도 해야 하고, 사회적 갈등도 치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드보카트형과 메르켈형 리더십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 지도자들은 어떤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올바른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권위나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가. 국민을 통합시킬 조화의 리더십은 있는가. 그 답은 독자들이 잘 알 것이다.

유재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