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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세기의 재판을 지켜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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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진명 소설가

김진명 소설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항소심 결심을 불과 일 주일 앞두고 특검은 공소장에 새로운 사실을 추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2014년 9월 15일의 1차 독대 사흘 전인 9월 12일에 청와대에서 만났다는 내용이다. 이에 이 부회장은 “그런 사실이 있다면 나는 치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제껏 특검과 이 부회장은 사사건건 사실 관계를 다투어 왔기에 이 독대의 진실 여부는 전체 공소 사실의 진위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된 형국이다.

항소심 결심 앞둔 이재용 재판 #독대 여부가 진실 판단 시금석 #의도적인 사실의 편집은 안 돼

추리기법을 즐겨 쓰는 작가의 눈으로 볼 때 이 사안에서 이 부회장이 거짓말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청와대에 갔는지 여부가 진술 전체의 신뢰를 결정하고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거짓말을 하려면 청와대의 감시 시스템을 사전에 전부 체크해 자신이 그 어떤 감시기제에도 노출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상식에 비춰 볼 때 이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특검이 이 독대의 증거로 제출한 청와대 행정관의 일지는 신뢰성이 극히 의심되어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이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일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하루 종일 대구에 머물고 있던 날 청와대에서 롯데 대표를 만났고 심지어는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있던 중 청와대에서 두산 총수와 만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특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검사들을 투입하고도 이 부회장 재판의 디테일에 있어 계속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특검이 출발점에서부터 실체적 진실 발견 대신 의도된 목적을 달성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에 격분한 국민들이 몰려나온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최대한 엄중히 단죄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따라서 승마 지원을 강요죄로 본 검찰과 달리 형량이 월등히 높은 뇌물죄로 방향을 틀어 삼성이 속죄양이 된 것이라는 시각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 ‘디테일의 늪에 빠지지 않겠다’거나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루어진 은폐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이다’는 등 특검의 사뭇 장엄한 논고는 기실 증거가 부족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시론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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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특검이 마냥 잘못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정농단 무리들의 범죄 사실을 특검이 불철주야로 숨 가쁘게 달려 속속들이 밝혀낸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엄단이라는 의도 아래 사실의 조각들을 편집한 그릇된 사법절차 수행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순수한 실체적 진실을 찾아 그 결과에 따라 유무죄를 가리는 수사의 귀납적 본질을 외면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 부회장과 삼성은 턱없는 중형을 받았다. 더군다나 특검의 사회공헌 모독이라는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증오까지 한 몸에 받아 자국민의 긍지와 애정이 가장 큰 힘인 국제경제 전쟁에서 심대한 국익의 손실을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뇌리에는 1977년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 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세계 100대 기술 관련 기사가 실렸다. 미국이 60여 개, 일본이 20여 개 나머지 10여개는 유럽이 가졌다는 보도를 보며 대학 2학년이었던 나는 절망했었다. 당시 한국의 매출 1위 기업은 가발 회사였다. 나는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우리나라가 이 100대 기술 중 단 하나도 가지지 못할 걸로 비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 어느 해인가 삼성이 반도체 1위 기술을 보유하면서부터 연관 기술을 중심으로 지금은 우리나라가 대여섯 개의 세계 1위 기술을 갖게 됐으니 삼성의 사회공헌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하튼 모든 굽이를 돌고 돌아 마지막 심판의 날이 정해진 지금 양편으로 갈라진 국민의 눈길은 직선으로 법원에 꽂혀있다.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이라는 역사적 회오리 와중에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재판부로서 여느 사건에 비해 과중한 중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모든 상념을 지우고 명경지수(明鏡止水)의 평정심으로 법정에 임해야 한다. 재판관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판결했을 때만 남의 운명을 결정한 부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법의 존엄성도 지킬 수 있다. 나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재판부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존중하는 것만이 이 사회를 올바로 유지하는 길이라 말하고 싶다. 이 사건과 관련해 기나긴 시간을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고뇌한 최고의 지성을 믿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선동이 판치는 야만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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