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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거기 어디?] 연희동에서 만난 19세기 파리 풍경 '오데옹상점'

중앙일보

입력

연희동 오데옹상점 입구. 나무판으로 된 한글 간판이 복고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연희동 속 작은 유럽이 펼쳐진다.

연희동 오데옹상점 입구. 나무판으로 된 한글 간판이 복고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연희동 속 작은 유럽이 펼쳐진다.

‘향초의 향기일까, 사라진 시간들의 향기일까.’ 아늑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진 한 장의 방 사진과 함께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올라온 글이다. 사진 속 공간은 나무 가구, 레이스 천, 향초, 풍경화 등이 어우러져 유럽의 어느 오래된 가정집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곳의 주소는 서울 연희동. 유럽에서 건너온 물건들과 그 물건을 스치고 지나간 시간의 향기를 함께 전시하는 곳, 빈티지 소품점 ‘오데옹상점’이다.

3개월마다 분위기 갈아입는 유럽풍 빈티지 소품점 #사표 던지고 무작정 떠났던 파리 여행길이 계기 #"상점 아니라 기억을 옮겨 놓은 전시공간" #지금도 한 달씩 프랑스에 머물며 물건 수집 #빈티지 마니아들 입소문…인스타 팔로워 1만

오데옹상점은 2016년 6월에 문을 열었다.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빈티지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특히 3개월에 한 번 유럽에서 새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몇 개월 만에 가게를 찾으면 같은 가게임을 의심할 정도로 가구 배치나 진열된 물건이 모조리 달라진다고 한다. 현재까지 #오데옹상점 해시태그는 2000개 이상 쌓였고,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인스타 계정은 팔로워 1만 명을 넘겼다.

8일 늦은 오후 오데옹상점을 찾았다. 행정상 주소는 연희동이지만, 동진시장 맞은편에 있어 연남동으로 설명하는 게 더 쉽다. 지도 앱에 따르면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10분 거리다. 큰길을 따라 쭉 걷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한 번만 들어가면 된다.

오데옹상점은 지하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복잡한 골목길을 헤맬 필요 없이 큰길을 쭉 따라 걸으면 된다.

오데옹상점은 지하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복잡한 골목길을 헤맬 필요 없이 큰길을 쭉 따라 걸으면 된다.

외딴 골목 안, 유독 따스한 노란 빛을 내뿜으며 ‘오데옹상점’이 존재를 드러냈다. 맛집·카페 등등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모인 동진시장 뒤편 연남동 거리와는 느낌이 달라 다소 뜬금없다. 옆 건물은 엔지니어링 회사, 바로 옆 점포는 퀵서비스 사무실이다. 그런데 이처럼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다는 점이 오히려 묘한 분위기를 낸다.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숨겨진 문을 발견한 느낌이다.

오데옹상점의 외관. 간판이 작아 선뜻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따스한 조명이 앤티크 소품점의 느낌을 물씬 내고 있어 찾기 쉽다.

오데옹상점의 외관. 간판이 작아 선뜻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따스한 조명이 앤티크 소품점의 느낌을 물씬 내고 있어 찾기 쉽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실내로 입장하는 순간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온 듯했다. 마침 실내에선 영화 ‘캐롤’의 사운드트랙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향초 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23㎡(7평)의 작은 가게는 빈틈을 찾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물건들로 곳곳이 채워져 있었다. 촛대·액자·문진·거울 등 멋스럽게 색이 바랜 소품 사이사이에는 고서적과 빈티지 엽서, 주인이 직접 찍어 인화한 풍경 사진 등이 자리잡고 있다.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프랑스 시대극 영화의 미장센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 이번 인테리어는 지난 가을 프랑스 앙부아즈 지방에 다녀온 기억들로 꾸몄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 이번 인테리어는 지난 가을 프랑스 앙부아즈 지방에 다녀온 기억들로 꾸몄다고 한다.

액세서리 등을 올려놓고 보관하는 트레이, 촛대, 사진꽂이 등 빈티지 소품들이 테이블 가득 진열돼 있다.

액세서리 등을 올려놓고 보관하는 트레이, 촛대, 사진꽂이 등 빈티지 소품들이 테이블 가득 진열돼 있다.

오데옹상점의 정세희(32) 대표는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그 안에 있었다. 잿빛 하이넥 니트에 목 부분이 사각으로 파인 검은색 드레스를 겹쳐 입은 차림이 우아했다. 앤티크한 공간 연출을 위해 일부러 준비한 의상이냐고 묻자 “원래 취향이 이렇다”며 웃었다. 그는 오데옹상점을 ‘좋아하는 것들을 실현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이곳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며, 수익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하는 일은 따로 없다는 뜻이다.

오데옹상점의 정세희(32) 대표. 미술을 공부하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앤티크한 취향을 고수해왔다고 한다. 오데옹상점은 오래된 물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오데옹상점의 정세희(32) 대표. 미술을 공부하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앤티크한 취향을 고수해왔다고 한다. 오데옹상점은 오래된 물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상점을 열기 전, 정 대표는 7년간 인테리어 회사에서 브랜드 기획과 제품 디자인을 했다. 2015년 사직서를 던지고 홀연히 프랑스로 떠났다. 공부를 더 하거나 사업구상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일단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 프랑스와 아무런 인연이 없고 언어도 전혀 몰랐지만 일단 갔다. 한 달간 파리 오데옹 지역에 머물렀다. 좋아하는 풍경을 보고 취향에 맞는 물건을 파는 가게들을 찾아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여행의 기억을 담아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게 오데옹상점이다. 가게 이름도 머물었던 곳의 지명을 그대로 따왔다.

“한 달간 프랑스에 머물었던 기억이 너무 소중했어요. 그때는 다시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당시의 감성과 추억을 어떻게든 되살려놓고 싶었죠.”

오른쪽 나무 트레이 위에 놓인 황동 제품들은 정 대표가 직접 만든 제작 상품이다. 빈티지 소품보다는 자체 제작 상품으로 수익을 유지한다.

오른쪽 나무 트레이 위에 놓인 황동 제품들은 정 대표가 직접 만든 제작 상품이다. 빈티지 소품보다는 자체 제작 상품으로 수익을 유지한다.

초기의 오데옹상점엔 지금보다 여백이 많았다. 상점보단 전시 공간에 가까웠다. 정 대표의 전공인 섬유디자인과 금속공예를 살려 직접 만든 물건들도 전시했다.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둘 판매를 하다 보니 점점 가게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렇게 생겨난 수익을 들고 또 다시 프랑스로 떠났다. 이젠 가게 유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출장을 간다. 여행을 기록하기 위한 장소가 새로운 여행의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편지 위에 올려놓은 물건은 잉크웰이 달린 문진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잉크와 펜을 담아두는 용도로 쓴다.

편지 위에 올려놓은 물건은 잉크웰이 달린 문진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잉크와 펜을 담아두는 용도로 쓴다.

물건을 고르고 진열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정 대표의 취향에 따른다. 프랑스에서 직접 골라 온 물건, 유럽 각지와 인도 등에서 수입한 물건, 정 대표가 직접 만든 황동 소품 및 오브제가 뒤섞여 있다. 가장 종류가 다양하고 수량이 많은 품목은 촛대다. 가격은 제품마다 천차만별이다. 현재는 1만 원대부터 6만 원대까지 있다. 가장 비싸게 팔았던 촛대는 양초 3개를 꽂을 수 있는 제품으로 12만원이었다. 그 외 장식함·트레이·액자·거울·편지 칼·문진·잉크웰(잉크를 담아 두는 물건), 유리 화병, 레이스와 패브릭 제품 등이 있다. 문고리나 옷걸이, 서랍 손잡이는 기존 가구와 결합해 활용이 가능하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60년 사이 출간된 고서적도 한 쪽에 쌓여 있다.

19~20세기 유럽에서 실제로 출간됐던 고서적들.

19~20세기 유럽에서 실제로 출간됐던 고서적들.

정 대표가 디자인한 황동 수납함. 뚜껑에 'ODEONG(오데옹)'이라고 새겨져 있다.

정 대표가 디자인한 황동 수납함. 뚜껑에 'ODEONG(오데옹)'이라고 새겨져 있다.

모두 주인이 애정을 갖고 엄선한 물건들이다. 팔면서 아쉽지는 않을까. 정 대표는 “체코에서 가져온 다리 부러진 목각상(나무로 만든 조각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버려질 뻔한 물건을 소장할 생각으로 구해 왔는데 단골 손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국 판매했다. “상처가 난 물건을 수집해요. 제가 아니면 버려졌을 물건을 데려오면, 그 물건들이 고마워하면서 제 공간을 지켜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취재 도중에도 손님은 꾸준히 찾아왔다. 단골로 정 대표와 반갑게 인사하는 손님도 있었고, 친구에게 “아까 왔었는데 너무 예뻐서 널 데려왔다”고 말하는 손님도 있었다. 처음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다고 한다. 가게 안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일인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손님들은 천천히 가게를 몇 바퀴씩 돌며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분위기를 즐긴다.

평일인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손님들은 천천히 가게를 몇 바퀴씩 돌며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분위기를 즐긴다.

정 대표는 앤티크 소품을 어려워하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온 집을 갑자기 이 가게처럼 꾸미려고 하면 엄두가 안 나요. 벽 한 면, 책상 위 등 작은 공간부터 시작해 보세요.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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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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