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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대학살"…당내파벌 무력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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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이번 공천작업 특징은 과거 여당의 단선·하향적 방식대신 회의체 성격의 공천심사위를 구성해 밖으로 어느정노 민주적인 면모를 보이려했던 점이다.
그러나 심사위만 구성했을 뿐 심사 장소조차 처음 한때 「안전가옥」(안가·일반인 접근 불가가옥)을 이용한데서 볼수 있듯이 철저히 비밀·밀실작업이었으며 다만 필요에 따라 적당량의 정보를 흘려(?)정보수요를 충당했다.
공천작업 과정에서 권익현·권정달 의원 등 과거거물들이 탈락되는 사실을 선택적으로 언론에 흘려줌으로써 당사자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론의 반응을 시험하는 등 철저히 계획된 계산아래 작업을 진전시켜나갔다.
공천심사위가 구성되기 훨씬 전부터 모모인사는 제외될 것이라는 얘기가 정계에 파다했고 이 소문들이 거의 적중했던 점으로 미뤄 공천심사위는 미리 계획된 스케줄을 따라만 갔다고 봐야할 것 같다.
○…공천심사위가 구성된 것은 지난 10일.
채문식 대표위원만 출퇴근(?)했을 뿐 모두 합숙하며 심사했는데 「안가」라는 이미지가 안좋아 딴 비밀장소로 옮겼다.
채대표는 처음엔 별로 무겁지않은 분위기였으나「거물」들에게 손이 가면서부터 어두운 표정. 16일 저녁엔 『꽃이 피면 고향엘 내려가야지…』하는 등 낙향의사까지 비춰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각 지역을 대표한 10인 공천심사위가 구성됐으나 이번 공천에서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당의 실무책임자인 심명보 사무총장,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이었던 이춘구 의원, 최병렬 청와대정무수석 등 이른바 핵심그룹.
이밖에 외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윤환 정무장관,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학성 의원 등 노대통령의 직계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공천심사위가 후보들을 심사한다 하더라도 핵심인물들이 구상하고 있던 인선측의 한도내에서 심사가 진행되었으리라는 추측이다.
이점에 관해 한 고위인사는 『공천심사는 소위와 전체회의의 2원 구조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이는 민정당내부의 세력분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하다.
밖으로 내비치지는 않고 있으나 민정당내에는 은밀한 가운데 「준파벌」이 형성되려하는 중이었다.
당내에서는 권익현·권정달·이종찬 의원을 이 그룹들의 리더로 꼽고 있었다.
이번 공천의 특징은 권위주의적 인물배격, 혹은 5공화국핵심 인사와의 단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부담스런 이들을 철저히 무력화시키자는 의도가 어느정도 깔려있다고 보아야한다는 분석도 없지않다.
권정달 의원 자신을 포함, 권의원의 지지세력인 경북의원들과 이종찬 의원을 둘러싸고 있던 윤길중·이찬혁·봉두완·정남의원, 윤석정씨등 이 탈락됐고 노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던 권익현 의원까지 최종에 탈락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 등이 이러한 권력내부의 미묘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공천작업의 자료는 당에서 준비한 원본이 기초가 되었으나 관계정보기관의 자료가 많이 참조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특히 특정인사를 제외시키기위한 증빙서류 구비에는 관계기관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다.
한 인사는 『국회의원 하기가 힘들 것 같더라』며 『신상자료만도 한보따리가 되더라』고 전했다.
거물들을 탈락시키면서 이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한때 우려하기도 했으나 관계기관이 확보하고 있는 「하자」증빙서류가 완벽해 만일의 사태때는 이를 근거로 이들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는 것.
○…공천과정에선 공천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영향력이 작용돼 「내사람」「네사람」하는 식으로 심사위원지분이 작용했다는 것.
서울 양천을구의 경우 의외의 인물이 들어선 것이나 경기도 구리시에 전혀 인연이 없는 인물이 한때 거론됐던 점등이 이지역 출신 심사위원들의 개인적인 영향력의 결과라는 얘기다.
또 강원도 K의원의 경우 이권 개입 등 하자가 있어 탈락설이 유력했는데도 심사위원중 실력자의 후원으로 살아남았다는 소문도 있다.
서울의 한 지역구를 맡은 전직장관의 경우 과거 장관시절 심사위원중 한사람과의 인연이 작용했으며 최후까지 경합했던 경남 한지역의 경우도 심사위원과의 개인적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특히 심사위원이 특정인을 떨어뜨리는데는 어느정도 영향력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지역구별로 심사해 나갈 때 특정인에 대해 『지역구 기반이 약하다』, 혹은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걸고넘어지면 이 인사는 일단 보류된 뒤 증빙서류로 이 사실이 입증되면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
이런 식으로 희생된 케이스로는 서울의 신진 K씨, 경북의 현역 P의원 등이 거명되고 있다.
○…민정당이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신진인사의 영입.
노대통령은 공천인사의 전체구도가 다이아먼드형이 될수 있게 60대 이상인사와 30, 40대초반 인사를 엇비슷하게 구성토록 기준을 제시했다.
당에서는 의욕을 가지고 30, 40대 초반을 찾아 헤맸으나 적절한 경력을 가진 인물을 발견하지 못해 주로 학생운동권과 과거 학생회장출신들을 접촉.
이중 운동권 출신들이 입당을 거절해 학생회장 출신들이 대신 많이 기용됐다.
이들은 단국대학생회장 출신 설영주씨(성동을), 부산대학생회장 출신 안병해씨(영도), 한 대학생회장 출신, 연세대학생회장출신 안성혁씨(서대문을)등이다.
이들은 또 대통령선거당시 사조직인 태맥회 출신이어서 이들의 공천은 논공행상의 성격도 띠고 있다.
언론계인사는 심명보 사무총장이 교섭을 맡았으며 학계인사의 경우 김학준 의원이 천거를 많이 했다는 소문.
○…지난10일 공천심사위가 밀실작업을 한곳은 관계당국의 「안가」가 아니라 서울 남서울호텔부근의 일반주택이었다는 후문.
이들은 삼청동안가엘 가는체 하다가 곧 이곳으로 옮겼는데 2층 양옥인 이집은 당중앙위원의 소유로 팔려고 내놓았다 매매가 안돼 비어있어 이를 이용했다는 것.
이집은 방이 6개로 그동안 채대표를 제외한 8명의 심사위원들이 숙식했는데 한방에 3∼4명씩 같이 잤으며 전화도 2대만 설치, 특별한 연락 이외에는 사용치 않았다는 것.
○…민정당공천에서 권익현 고문과 권정달 창당사무총장의 탈락은 하나의 사건이라 불릴만큼 내외에 큰 충격. 일부에서 「안가의 대학살」이라고까지 표현.
내부인사들까지 두사람의 소식에 『정말이냐』『그럴리가 있느냐』를 연발하며 한결같이 놀라움속에 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모 중진의원은 이번 공천은 『두「권」의 실각속에 모든 의미가 함축돼 있다』면서 『단순히 의석 1∼2석을 더 차지하느냐, 잃느냐의 차원을 넘은 통치차원의 방향제시며 정계재편의 예고』라고 해석.
그러나 한 의원은 『두사람을 탈락시킨 뜻이 구각탈피에 의한 6공화국의 새로운 이미지 부각에 있다면 「유신인사」들을 복귀시키고 5공화국의 몇몇 상징적인 강경그룹을 그대로 남기거나 보다 중용하는 의미는 무엇이냐』면서 『기준도 없고 원칙도 없는 단순파워게임적 성격』이라고 비난.
○…권정달 사무총장에 대해선 그가 공천심사위에서 빠질 때부터 탈락설이 나도는 등 어느정도 예상됐던 일이나 권익현 고문의 탈락은 전혀 예상밖. 두권 의원은 모두 지역구활동중「탈락」을 소문으로 들어 완전히 허를 찔린 골.
권고문은 대표위원까지 지낸 민정당의 간판급 거물이며 노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로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있는 점등에서 누구도 그의 탈락을 점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알게 모르게 당내 많은 인맥을 거느리고 있어 이번 공천에 상당한 입김을 불어넣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상당수에 이를 정도.
그러나 일부에선 지난 조각때 『권고문이 총리나 국회의장을 희망했다더라』는 근거없는 소문과 함께 잠시 비판론이 일었던 사실과, 얼마전 주일대사설이 나돌았던 점등을 상기시키며 『권고문 제거는 오래전부터 검토돼 왔던일 아니냐』고 해석.
○…지구당위원장중 현역의원탈락자는 모두 28명으로 이중 채대표와 이병직·이범준·권영우·홍성우 의원 등 5명은 자진출마포기 인사들이어서 순수공천탈락자는 23명인 셈.
부산·대구·강원·충북에선 탈락자가 1명도 없는 반면 경북지역은 위원장 10명중 모두7명이 제외.
윤길중·김숙현·이찬혁 의원 등은 고령케이스며, 최창규 의원은 지나친 공천경합이 문제점으로 제기돼 탈락되었다는 후문.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의원과 전전대통령의 고향출신인 합천의 유상호 의원 등은 두권의원의 탈락과 함께 5공화국 청산의 의미인 것으로 풀이.
박규식·염길정 의원 등은 강성이미지가 감점으로 작용되었다는 풀이.
이상재 의원과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정석모 전사무총장과 이상익 의원 등은 지난 대통령선거의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풀이며 기타 조상래·전종천·김재호·나석호·박권흠·김종기·박익주·이재우·정남 의원 등은 지역구관리가 소홀했거나 중앙에서의 활동이 저조했다는 점등이 결격사유로 꼽혔다는 후문.
봉두완 의원은 평소의 직언이 지도부의 눈에 거슬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봉의원과 함께 큰 하자가 없는 것으로 꼽히고 있는 박경석·이찬혁 의원이 제외된 것을 두고 당내에선 「이종찬 부대」의 제거가 아니냐는 등의 억측이 분분. <문창극·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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