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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오줌서 황금 뽑아내려던 열망이 근대과학 터 닦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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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1면

[비주얼 경제사] 연금술

조셉 라이트, '현자의 돌을 찾으려는 연금술사'. 1771~95년.

조셉 라이트, '현자의 돌을 찾으려는 연금술사'. 1771~95년.

어두운 실내에서 한 노인이 무릎을 꿇은 채 뭔가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둥근 플라스크에서 새어 나오는 흰 빛줄기다. 이 노인은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연금술사다. 액체가 든 플라스크는 밀봉된 채 가열 기구에 연결돼 있다. 주변에는 다양한 용기와 책이 보인다.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는 무엇일까? 연금술사는 이 실험으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구하기 힘든 물질 만드는 연금술사 #이슬람선 염산·황산·질산 찾아내 #단테·초서는 사기꾼이라고 비판 #연금술에 빠진 뉴턴의 성취는 역설

그림1은 18세기 말 영국 화가 조셉 라이트가 그린 작품이다. 그는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어느 그림에서건 그는 빛과 그림자가 낳는 대조의 효과를 극대화해 보여줬다. 이 그림도 예외가 아니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종교적 구도자를 묘사하는 듯하다. 건물의 내부구조는 성당을 연상시키고 달빛이 비치는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린다. 주인공은 무릎을 꿇고서 마치 성스러운 기적을 목격하는 듯 숙연한 표정을 짓고 흰 빛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브란트가 찾던 금, 보일이 ‘인’으로 밝혀내

그러나 그림의 주인공은 구도자가 아니다. 함부르크 출신으로 상인이었다가 연금술사로 직업을 바꾼 헤니히 브란트라는 실존 인물이다. 브란트는 1669년 오줌이 노란색이라는 데 착안해 오줌으로부터 금을 추출하고자 실험에 나섰다. 오줌을 끓인 후 잔여물을 다시 고온으로 가열하면 연기가 발생했는데 이 연기를 응축시켜 끈적이는 흰색 용액을 얻었다. 신기하게도 이 용액에서는 차가운 느낌의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브란트는 자신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림1은 이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물질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이 물질의 정체는 십여 년 후 최초의 근대적 화학자라고 불리는 로버트 보일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보일은 이 물질이 독립적 원소임을 확인하고 ‘빛을 나르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인(phosphorus)이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사람의 뼈를 구성하는 요소로 확인된 물질이다. 브란트는 금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미지의 신물질을 추출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연금술사는 누구인가? 세상에서 얻기 힘든 궁극의 물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이 궁극의 물질은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고 불렸다. 현자의 돌은 납이나 수은과 같은 이른바 ‘근원물질’을 황금으로 변환시키는 효능을 지닌 물질로 생각됐다. 또한 모든 질병을 치유하며 영원한 젊음과 불멸을 가져다주는 ‘엘릭시르(elixir)’라는 신비의 약물이라고도 여겨졌다. 말하자면 연금술은 천상에서나 있을 법한 완벽성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 탐구행위였다.

연금술은 뿌리가 깊다. 중국과 인도와 지중해 연안에서 독자적으로 연금술이 발달했으며 초창기 연금술의 기본적 틀은 적어도 3000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의 목적과 범위와 방법이 워낙 다양했기 때문에 이 모두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 연금술이 인류 역사에 중요하게 등장한 것은 이슬람 세계에서였다. 이슬람 연금술은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발달한 연금술에 연원을 뒀다. 특히 8세기에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라는 연금술사가 획기적 기여를 했다. 그는 기존의 연금술에서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엄밀한 실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연구방법을 확립했다. 이후 이슬람 연금술사들은 끊임없이 실험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염산·황산·질산 등 여러 물질을 찾아냈다.

이슬람 연금술은 12세기부터 유럽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영향권에 있었던 스페인 도시들에서 아랍어 원전들이 라틴어로 번역 소개된 덕분이었다. 이전에 유럽에서 연금술의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헬레니즘 시기 이집트의 연금술은 유럽에도 전파돼 신비주의와 점성술의 전통을 만들었고, 그리스의 자연철학 전통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12세기 이후 이 이론들과 이슬람 연금술이 융합되어 유럽 특유의 연금술로 발전했다.

'네 체액', 투언 하이저 『연금술』중에서. 1574년.

'네 체액', 투언 하이저 『연금술』중에서. 1574년.

그림2는 중세 유럽 연금술의 융합적 성격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실험을 이끄는 연금술사다. 두 손에 든 용기에서 변화가 발생하고 있고, 아래쪽에 놓인 두 용기에는 근원물질인 황과 수은의 부호가 각각 적혀있다. 연금술사는 절반은 남성, 절반은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상이한 두 성질의 결합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림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1사분면부터 시계방향으로 각각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이라 적혀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만물이 공기(뜨겁고 습함), 흙(차갑고 건조함), 물(차갑고 습함), 불(뜨겁고 건조함)의 네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체도 이를 반영해 피, 흑담즙, 점액, 황담즙의 네 체액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의 비중에 따라 그림에 표현된 상이한 네 기질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과 히포크라테스의 4 기질 설이다. 또한 그림의 각 사분면에는 세 개씩의 부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점성술에 나오는 12별자리를 의미한다. 이렇듯 중세 유럽의 연금술은 오래 전승돼 온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고 독특한 부호를 써서 기록했다.

연금술사들이 사용한 비밀스러운 상징과 비유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자신을 연금술사라고 소개하는 사기꾼들에게 속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았다. 단테나 초서와 같은 작가들이 연금술사를 신랄하게 비판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금술이 물질을 변화시키는 진짜 기술이라 해도 여전히 문제였다. 마음대로 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화폐제도가 대혼란을 맞을 게 아닌가. 영국에서는 이런 우려로 1404년 연금술을 처벌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1689년 연금술로 금을 합성할 수 없다는 보일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 법률은 유효했다.

하지만 모든 연금술사가 엉터리였던 건 아니었다. 연금술사 가운데에는 일생을 연구에 바친 이들이 분명 있었다. 그들은 연금술에서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탐구의 길을 모색했다. 연금술은 허위고 과학은 진리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역사적 진화과정을 무시하는 견해다.

경제학자 케인스 “뉴턴은 마지막 마술사”

광학을 설명한 아이작 뉴턴의 실험 노트, 1660년대경.

광학을 설명한 아이작 뉴턴의 실험 노트, 1660년대경.

과학 발달에 연금술이 끼친 기여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이작 뉴턴의 연구다. 뉴턴은 수학, 천문학, 광학, 물리학 등에서 빛나는 진보를 이룬 최고의 석학이었다. 이분법적 시각에서 보자면 뉴턴은 미신적인 연금술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과학과 계몽의 시대를 연 지식 거인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뉴턴이 사망한 지 두 세기가 지난 1936년 뉴턴의 미발표 원고들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이를 눈여겨본 이는 다름 아닌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뉴턴의 유작 329묶음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연금술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뉴턴이 연금술이 처벌 대상이던 시대에 연금술에 심취했다니! 케인스는 뉴턴이 ‘이성의 시대의 첫 인물’이 아니라 ‘마지막 마술사’라고 봐야 한다는 평가를 남겼다.

뉴턴의 여러 연구에 연금술의 영향이 깊이 배어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광학 이론이다. 뉴턴은 암실을 만들고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광선을 프리즘에 비추는 실험을 했다. 백색광이 무지개와 같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고 뉴턴은 굴절률이 서로 다른 여러 색깔의 광선들이 백색광 속에 원래 존재한 것임을 밝혀냈다. 또한 스펙트럼을 프리즘에 다시 통과시키면 다시 백색광이 얻어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림3은 이런 원리를 묘사한 뉴턴의 스케치다. 뉴턴의 이론은 연금술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물질을 쪼개면 기본 성분들을 얻게 되고 이들을 조합하면 새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연금술의 핵심적 논리니 말이다.

뉴턴의 표현처럼 근대과학의 발달은 앞선 거인들의 높은 어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인의 리스트에는 유명한 서양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의 오랜 연금술사들도 포함돼야 마땅할 것이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화의 풍경들』『비주얼 경제사』『세계경제사 들어서기』 등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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