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속도 내는 남북 대화 … '비핵화' 목표 잊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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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북 대화가 평창 겨울올림픽을 매개로 하루가 다르게 속도를 내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새해 첫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올림픽 참가를 시사하는 신년사를 발표했고, 이튿날엔 우리 측의 남북 고위급 회담 제안이 있었으며, 3일엔 판문점 연락 채널이 23개월 만에 재개됐다. 그리고 그제 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올림픽 기간 중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기로 합의하자 어제는 북한이 고위급 회담을 갖자고 화답해 왔다. 연일 올리브 가지(평화)를 주고받는 소식이 전해져 ‘한반도의 봄’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한·미 군사훈련 연기에 북한도 고위급 회담 화답 #의제론 북한 올림픽 참가와 남북 관계 개선 논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임을 분명히 해야

이 과정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 통화다. 문 대통령이 “미국의 강력한 입장 견지가 남북 대화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치하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말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 한국이 북한의 기만전술에 농락당하며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밝힌 “남북 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며 “남북 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는 자세가 굳건하게 견지돼야 한다고 본다. 철석같은 한·미 공조만이 북한의 이간계(離間計)를 극복하고 우리의 대북 협상력을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9일부터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이 시작된다. 많은 민감한 문제들을 논의해야 한다. 개·폐회식 남북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북한 대표단 입국 경로는 물론 참가 비용 지원이 대북 제재 위반은 아닌지 등 세밀한 논의가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들과 함께 이번 고위급 회담이 단순하게 북한의 올림픽 참가만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다행인 것은 의제와 관련, 우리가 “여러 상호 관심사항에 대해 논의하자”고 한 것에 대해 북한도 “평창 올림픽 참가를 비롯한 남북 관계 개선 문제”라는 의지를 밝혀 왔다는 점이다.

2년여 만에 재개되는 고위급 회담은 한반도의 암 덩어리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물론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다 . 그동안 꽉 막힌 남북 관계를 감안할 때 상호 신뢰 구축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한·미가 군사훈련 연기의 결단을 내렸듯이 북한도 핵 동결, 즉 더 이상의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로선 북한의 올림픽 참가 성사에만 급급해 행여 북한의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중국을 포함해 국제 사회가 하나가 돼 움직이는 대북 제재의 대열을 흩뜨리는 조치는 반드시 삼가야 한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대화에 나오는 게 북한의 유일한 선택이 돼야 함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