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등 신화'에 취한 애플·인텔의 헛발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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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글로벌 정보기술(IT) 대기업인 애플과 인텔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애플은 구형 아이폰 배터리의 노후화를 막으려고 기기 처리속도를 몰래 떨어뜨렸다가 사달이 났다. 애플의 혁신 이미지가 일시에 훼손된 것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집단소송 사태로 번졌다. 주가는 폭락해 수십조원의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인텔은 자사의 반도체 칩에서 치명적인 보안상의 결함을 발견하고도 6개월 넘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전 세계 PC의 70%가 인텔의 반도체 칩을 쓴다. 1990년대 인텔은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마케팅으로 재미를 봤다. 인텔 칩이 들어간 컴퓨터는 신뢰할 만하다는 메시지로 후발 경쟁사를 압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텔 인사이드’ 컴퓨터는 해킹 위협에 노출된 PC의 상징이 돼버렸다. 더구나 인텔의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1월 자신이 보유하던 회사 주식을 미리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나 경영진의 도덕성마저 도마에 올랐다.

사후 대응에도 문제가 많았다. 뒤늦게 발표한 애플의 사과문엔 팀 쿡 CEO의 서명이 빠져 있었다.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보수를 챙긴 CEO가 애플 브랜드 뒤에 숨어 있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니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소리까지 듣는 것이다. 기기 성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면서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애플이나 반도체 칩의 보안 문제를 제때 공개하지 못한 인텔 모두 소비자의 신뢰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는 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1등 기업’ 프리미엄을 누려온 애플·인텔의 곤경을 지켜보면서 기업 경영의 엄중함을 새삼 느낀다. 두 회사의 실패 사례가 우리 기업에도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새기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