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관계자는 9일 "정 회장이 제사와 추모 행사를 주관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버지 추모행사를 장자(長子)가 주관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현대 가(家)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다르다. 정 회장은 형인 몽필씨가 1982년 교통사고로 숨진 뒤 실질적인 장자가 됐다. 그러다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었다. 현대그룹의 적통이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 등 주요 계열사를 동생(고 정몽헌 회장)이 맡았고,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끌고 나와 독립 경영을 하게 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2001년 작고했다. 정 회장은 2002년 선영에서 있었던 1주기 공식행사에만 참석했을 뿐 이후에는 선친과 관련된 행사는 물론 집안 모임에도 거리를 둬 왔다. 그는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집안 행사에 대신 참석시켰다. 그만큼 범 현대가와 왕래가 뜸했다. 그러던 정 회장이 선친의 추모 행사를 주관한다는 것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장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이 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5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친지들의 안부를 묻는 등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빈소에서 정 회장은 집안 사람들로부터 "현대 가의 장자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청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후 집안 챙기기에 나선 정 회장은 사촌인 정몽혁 전 현대정유 사장을 현대차 계열 부품회사인 아주금속 사장으로 영입했다. 또 90년 사망한 둘째 동생인 몽우씨의 아들인 일선(36)씨를 계열 철강사인 BNG스틸 사장으로 두고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다. 정 회장은 그동안 정 명예회장의 손때가 묻은 청운동 자택과 계동 사옥을 관리하면서도 가족이 참가하는 추모사업에는 나서지 않았다. 창업주 흉상도 다른 주요 현대 계열사에는 있으나 현대차그룹에는 없다. 지난해 4주기 때 열린 추모사진전도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그룹이 주도했다. 재계는 정 회장이 주도하는 5주기 추모 행사가 끝나면 정 명예회장의 추모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정 명예회장의 사후 5년 만에 현대 가에 봄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김태진 기자
*** 바로잡습니다
본지는 3월 10일자 2면에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장자로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5주기 제사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정 회장은 20일 정 명예회장의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사 참석 여부를 미리 예단해 보도한 것이 됐습니다. 이 점 정 회장과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취재 당시 여러 명의 현대차 그룹 관계자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 회장이 제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해 그런 보도를 했습니다. 정 회장은 기일에 앞서 지난 주말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을 찾았고, 제사에는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참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