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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짜리 기장 해수담수화시설이 애물단지 된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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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사진 부산시]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사진 부산시]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규모 5.8)이 발생한 하루 뒤인 13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소속 의원 등과 함께 지진 비상대응 태세 점검을 위해 고리원전을 방문했다.

2014년 8월 완공된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 #정부와 부산시, 두산중공업 1945억원 들여 지어 #그동안 방사성 물질 우려한 주민반대로 가동 못해 #지난 1일 두산중 관리인력 철수하면서 폐쇄 위기 #정부도 올해 유지관리비 부담분 24억원 편성 안해 #서병수 부산시장 "정부 차원의 해결책 강력히 촉구"

문 대통령은 “(고리원전이 있는 기장 앞바다의 바닷물로 만든 해수 담수화 페트병 수돗물을 들어 보이며) 기장 해수 담수화 수돗물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안전성 염려가 해소되지 않아 주민들이 (공급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마치 해수 담수화 수돗물을 홍보하는 자리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해 보입니다. 적어도 우리 쪽 자리에는 수거해주시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유튜브에 올라있다.

기자회견하는 서병수 부산시장.[사진 부산시]

기자회견하는 서병수 부산시장.[사진 부산시]

그로부터 1년 3개월여만인 2018년 초 기장군 해수 담수화 시설이 폐쇄위기에 놓였다. 2014년 8월 완공 이후 유지·관리업무를 해오던 두산중공업 직원 10여명이 지난 1일 모두 철수한 때문이다.

국책사업으로 2000억원을 들여 건립했지만 완공 3년간 제대로 가동을 하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부산시는 운영·소유권을 두고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문제의 시설은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봉대산 자락 4만5845㎡ 부지에 2014년 8월 완공됐다. 기장 대변항에서 바다 쪽으로 400m 떨어지고 고리원전에서 11㎞가량 떨어진 수심 10m에서 바닷물을 채취해 염분과 불순물을 제거한 뒤 미네랄 등 필수영양소를 첨가해 공급하는 시설이다. 하루 최대 4만5000t을 기장 주민 5만여 가구에 공급할 수 있다.

부지보상과 건설에 국토교통부 823억원, 부산시 425억원, 두산중공업 706억원 등 1945억원이 투입됐다. 시설물 가동은 두산중공업, 수돗물 공급은 부산시가 맡되 국토진흥원이 207억원을 들여 연구 중인 역삼투압 공정 고도화가 완료되는 2019년 12월 이후 부산시에 무상 양여하는 조건이었다.

기자회견을 하는 서병수 부산시장.[사진 부산시]

기자회견을 하는 서병수 부산시장.[사진 부산시]

하지만 2014년 8월 완공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취수구가 원전에 가까워 삼중수소(3H) 같은 방사성 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주민과 기장군이 식수 공급에 거세게 반대했다. 환경단체는 2014년 11월 고리원전 주변 해조류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요오드와 함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정상 가동이 어렵게 되자 부산시는 201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해마다 4억3000만원 정도를 들여 페트병(350mL)에 물을 담아 공공기관과 원하는 단체에 시범 공급했다. 한편으론 수돗물 정상 공급에 대비해 95억3700만원을 들여 직경 100~600mm의 관로 11.52㎞를 기장군에 깔았다. 그런데도 주민 반대는 가라앉지 않았고, 해수 담수화 설비는 점점 골칫덩이로 변해갔다.

그러자 정부 측 관리자인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진흥원은 지난해 9월 이 시설 소유권을 부산시가 조기에 넘겨받으라고 요구했다. 부산시는 그러나 “해수 담수화 시설의 t당 수돗물 생산원가가 1187원(2014년 기준)으로 낙동강 수돗물의 883원(2016년 기준)에 비해 304원이나 높다”며 거부했다. 하루 2만7500t을 생산·공급할 경우 원가차액인 연간 80억원을 부산시가 기장 주민에게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가 생겨서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완공된 ‘해수담수화 시설.이 시설은 기존의 증발식이 아니라 역삼투압식으로 염분 제거해 하루 4만5000t씩 생산할 예정이었다. 송봉근 기자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완공된 ‘해수담수화 시설.이 시설은 기존의 증발식이 아니라 역삼투압식으로 염분 제거해 하루 4만5000t씩 생산할 예정이었다. 송봉근 기자

부산시가 거부하자 국토부는 결국 지난해 10월 급수중단을 결정하고 2018년 유지관리비 중 정부 부담분 24억원(추정치)을 편성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토진흥원과의 협약으로 시설을 관리해온 두산중공업이 직원 철수를 결정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누적적자(100억원 주장)가 천문학적이라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정부의 의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병수 시장은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시설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예산편성도 안 했다”며 “두산중공업이 해수 담수화 시설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이 사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시설을 재가동해야 하고, 정부 차원의 확고한 의지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그러면서 “(가동을 중단하려면) 부산시가 투입한 425억원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국토부 수자원산업팀 관계자는 그러나 “이 사업은 연구개발사업이어서 법적으로 유지·관리비를 확보할 근거가 없다”며 “국토부가 부산시의 물 공급을 막은 적은 없다. 효율적인 통수를 위해 국토진흥원, 부산시와 협의해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완공된 해수담수화 시설의 내부. 송봉근 기자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완공된 해수담수화 시설의 내부. 송봉근 기자

애초 이 시설은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연구개발(R&D) 혁신과제(VC -10)로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짓기로 하고 자치단체 공모를 거쳐 기장군 건설이 확정됐다. 수돗물의 낙동강 원수 의존율(94%)이 높은 부산시민에게 취수원을 다변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훈전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입지선정 당시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했고, 주민들이 공급을 반대하면 주민투표로 의견을 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공급만 강행하려 했다”며 “정부와 부산시가 지혜를 모아 해체 후 이전 등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미숙 부산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과의 소통 등 의견수렴을 투명하게 하지 않았고,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정보공개 등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아 빚어진 일”이라고 규정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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