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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카사노바가 일편단심 민들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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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주연:히스 레저·시에나 밀러
장르:코미디·멜로
홈페이지:(www.bvi.co.kr)
등급:15세

20자평:위험하지 않은 바람둥이,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로맨스.

서양 바람둥이의 대표선수를 꼽으라면? 당연히 카사노바와 돈 후앙이다. 이 중 돈 후앙은 구전민담을 거쳐 문학으로 정착됐으니 가공의 인물에 가깝다. 반면 18세기 이탈리아 사람 카사노바는 실제로 꽤 복잡다단한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유럽 방방곡곡을 떠돌며 외교관 등 온갖 직업을 전전했고, 법학 같은 학문에서 다양한 외국어까지 두루 능통했다고 한다.

이런 인물이라면 당시 여자들은 둘째 치더라도, 현대의 영화제작자들에게 퍽 매력적임에 틀림없다. '카사노바'라는 제목의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만도 무성영화시대부터 줄잡아 10여 편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익숙한 인물을 다시 선보이려면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카사노바'는 일단 이름과 시대만 빌려올 뿐, 카사노바의 성품을 요즘 관객의 취향에 맞춰 말랑말랑하게 재가공하는 길을 택했다.

혹 여성 관객의 불쾌감을 살 만한 카사노바의 화려한 엽색 행각은 초반부 맛보기로 그치고, 극중 카사노바(히스 레저)가 이내 평생의 짝이 될 만한 여성에게 반한다는 줄거리를 전개한다.

자연히 이 영화를 통해 카사노바의 진면목을 알기는 어렵다. 대신 베네치아의 고전적인 풍광과 시대극의 화려한 의상을 곁들인 로맨틱 코미디로는 그럭저럭 볼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극중 카사노바가 반한 상대가 맹렬여성 프란체스카(시에나 밀러)라는 점이다. 프란체스카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약된 당시에 남자 이름을 빌려 여권존중을 부르짖는 책을 남몰래 펴내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이런 프란체스카와 카사노바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육체적 쾌락으로든, 달콤한 말투로든 여성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적극적인 카사노바의 자세는 잘만 뒤집으면 프란체스카의 이상형이다. 프란체스카의 책은 당대 베네치아 여성들에게 카사노바와의 연애만큼이나 인기가 대단하다. 자연히 이 둘 모두 완고한 교회의 입장에서는 요주의 대상이자 불온한 인물들이다.

영화는 이런 설정에 물고 물리는 소동극의 재미를 덧붙인다. 인터넷도, 신문도 없던 시절이라 이름만 바꾸면 신분을 속이기 쉽다. 프란체스카는 이 남자가 그 카사노바인 줄 모르고, 카사노바는 프란체스카가 그 저자인 줄 모른 채 만남을 이어간다. 여기에 두 사람이 각각 정략적인 이유로 이미 결혼을 약속해 둔 또 다른 상대들과 교회의 조사단이 등장하면서 거짓말과 소동이 눈덩이를 굴리듯 커져 간다. 이 소동극은 나름대로 경쾌한 고비고비를 거쳐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모르고 보면 모르되, 곰곰이 따져보면 이는 카사노바를 유명하게 만든 여성편력과는 정반대의 결론이다. 한마디로, 희대의 바람둥이가 일편단심의 배우자로 변절하는 얘기다.

두 손 잡고 극장 나들이에 나선 데이트 관객의 입맛에는 나쁘지 않되, 카사노바라는 인물 자체에 관심이 있는 관객은 실망할 듯하다.

여성 관객이라면 괜찮은 덤이 하나 더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무뚝뚝한 카우보이를 연기한 히스 레저가 제법 곱상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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