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중국의 규제보다 우리가 더 세다, 이게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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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대한상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대한상의]

“한국 유일한 경쟁력이 스피드인데, 국회가 무너뜨린다”

“한국이 다른 경쟁국과 비교해 거의 유일한 비교우위가 ‘스피드’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그 장점을 와해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국회 5번 찾았던 박용만 직격탄 #사회주의국 중국보다 규제 많아 #법 바꿔달라 해도 점점 거꾸로 가 #세계 100대 혁신기업 사업모델 #한국이라면 절반이 시작도 못해 #정부 2년차 성적은 경제에 달려 #최저임금·근로시간 완급 조절을

전국 17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의 박용만 회장은 지난해 말 이뤄진 출입기자 신년 인터뷰에서 “기업 규제 수준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높은데도, 국회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이냐”며 “법을 바꿔 달라고 그렇게 국회에 갔어도 점점 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새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예상은.
“기업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이제 거의 걷혀가고 있다. 공정경쟁, 소득 주도 성장, 혁신성장, 사람 중심 등의 정책 방향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정책이 실제로 운용에 들어가면 난관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정책이든 찬반 논쟁이 있지만 단순히 논쟁 수준을 넘어서 이해관계자들의 ‘허들(장애물)’이 대단히 높다. 충돌과 갈등이 계속될 것 같아서 경제정책 운용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이슈가 기업들에는 큰 변화다.
“원칙과 현실의 문제를 나눠서 생각하자. 최저임금 문제는 정말 소득이 낮은 곳을 확인해서 그쪽으로 혜택이 많이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이 4% 정도 되는데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오르니 중소기업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면 기업은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근무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이 줄어드는 것도 현실이다. 원칙은 지키기로 하면서 현실의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 (기업) 규모에 맞춰서 좀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사안에 따라서 완급을 조절하는 식이다. 정부·노동자 측에도 이런 내용이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문제는 국회에서 입법이 돼야 해결이 될 것 같다.
“지난해 국회를 다섯 번이나 찾아가는 등 발이 아플 정도로 많이 다녔는데 우리의 호소에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허망하다. 솔직한 심정이 정말 절규라도 하고 싶다. 입법부가 좀 더 빨리 바꿔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절박한 상황을 알리고 관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박용만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박용만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둘러 풀어야 할 규제개혁 대상은.
“규제개혁이라는 단어가 오랜 기간 언급됐지만 큰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이제는 둔감해진 것 같다.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느냐.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하는 규제보다 우리가 더 규제가 많아서 불편하다고 그러면, 특히 새로 생기는 산업들이나 중대한 변화에 대해 규제의 벽이 아직도 더 많다고 하면, 그게 과연 이해되는 일인가. 낡은 규제는 정말로 없앨 때가 됐다. 세계 100대 혁신기업들을 뽑아 그 사업 모델이 한국에서 할 수 있겠는가 보니 절반이 넘는 사업이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발표한 50대 혁신기업에 중국 기업이 7개, 미국 기업이 31개, 그리고 다른 나라도 이름을 올렸는데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 이런 규제 때문에 우리가 스피드에서조차 뒤지면 무엇으로 이길 수 있을까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도 규제 관련 담당자들은 바꾸기를 주저하고, 입법부에 가면 서로 논쟁을 거듭하다가 안 돼 버린다.”
현 정부에서 이른바 기업을 무시하는 ‘기업 패싱’ 논란이 커졌다.
“기업 패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안 오는 것도 단순한 선택의 문제지 기업인 홀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부든지 2년 차에 들어가면 성적표로 검증받는다. 그 성적표는 결국 경제성적이다. 좋은 성적을 내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기업의 실적이다. 아마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이 기업일 것이다. 정부가 내세운 각종 조치가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경제 성적표가 나빠질지 모르고…. 그 고민을 기업보다 정부가 훨씬 더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서 ‘홀대론’ 논란도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다. 국내에서는 대통령 순방을 굉장히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관련돼서 노력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허탈한 이야기다. 비난을 위한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
대한상의 회장을 맡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갈등과 대립의 일상화, 변화 지체 등을 보면 자괴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국회에 법을 바꿔 달라고 그렇게 찾아갔어도 갈수록 점점 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기업 관련 법안이 1000건 넘게 발의가 됐는데 그중 700건 가까이가 규제법안이다. 내가 국회에 가서 그렇게 발품을 팔면 뭐하나, 되는 게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하나.
“대한상공회의소 회원의 97%가 중소·중견기업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밖에 없다. 사실 대기업은 특별한 창구가 필요 없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영향력이 있다. 물론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이해만 갖고 대변하기는 어렵다.”
 탈원전에 대한 생각은.
“노코멘트.(일동 웃음) 그 주제는 내가 얘기하면 진의와 상관없이 오해받기 때문에 안 한다.”(박 회장이 몸 담고 있는 두산그룹엔 원전사업이 핵심인 두산중공업이 있다) 

◆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1955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외환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두산그룹·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을 거쳤다. 2013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해 정치·사회 각계와 소통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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