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솔선 수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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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물가동향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2월중 소비자 물가가 1.6%나 올라 1년전에 비해7.8%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7.8%의 상승률을 1년이래 최고의 기록으로서 인플레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나 하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농수산물을 중심으로 한 식료품과 서비스요금의 상승에 선도되고 있다. 이런 품목들은 실제 시장가격보다 통계상으로 낮게 잡히기 쉬운 것들이라는 점에서 물가상승은 공식통계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공식통계로 나타난 물가상승률도 심상치 않은 것이지만 가계지출에서 느끼는 인플레는 벌써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가계는 가격상승 외에 전반적 소비수준의 고급화로 인한 부담까지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물가상승이 식료품과 서비스값에 의해 선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 잘 써온 대증적 물가안정책이 한계에 뫘다는 것을 뜻한다.
식료품이나 서비스는 값이 올랐다고 해서 수입 증대 등을 통해 공급을 늘리거나 행정규제로 가격을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우 고통스럽지만 정통적인 물가안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원론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서둘러야 할 것은 과잉유동성의 수속이다.
총통화 증가율은 작년 10월 이후 연5개월째 연간 억제목표선 18%를 넘고 있는데 이런 통화범람상태에선 인플레가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우리나라에선 돈이 늘면 약6개월의 시차를 두고 반드시 물가가 오르게 되어 있다. 지금도 돈이 범람하는 터에 앞으로 총선이라는 또 하나의 큰 출구가 남아있어 과잉통화의 구속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인플레를 그냥 끌고 가다간 심각한 정치·사회문제를 일으키고, 과잉통화의 수속 없이는 물가안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먼저 정부가 긴축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난 선거와 앞으로의 총선 때문에 압력도 많겠지만 재정지출을 대폭 죄어 물가안정의 의지를 보여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 1조4천여 억원의 세계잉여금을 추경재원으로 쓸 것이 아니라 한은차입금을 갚는데 일단 써야한다. 총선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먼저 솔선 수범한다면 민간여신을 죄어 나가는 것도 훨씬 쉽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또 형편이 어렵더라도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이 공공요금을 올리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먼저 요금을 올리면서 민간서비스값을 올리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재정지출을 줄이고 공공요금을 안 올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정통적 물가안정책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길 밖에 없다. 정부가 얼마나 용기를 갖고 물가안정을 위해 솔선 수범하는가를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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