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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1회용' 깨고 12년째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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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학전 그린 소극장은 마치 대학 강의실을 옮겨놓은 듯했다. '교수님'은 학전 김민기(55) 대표. 그가 '지하철 1호선'이 초연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숫자를 부를 때마다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이 출석에 답하는 학생처럼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다같이 사진 찍자"는 말에 우르르 몰려 나온 사람만 족히 100명은 돼 보였다. 이젠 감독으로 변신한 방은진(41)은 조교처럼 여유로워 보였고, 톱스타로 성장한 황정민(36)은 아직 졸업 못한 복학생인 양 쑥스러워했다. 28~30일 3000회 기념공연을 위해 첫 모임을 가진 이들의 면면만으로도 지하철1호선 12년의 두께는 넉넉하고 두툼해 보였다.

'지하철 1호선'의 과거와 현재가 한자리에 모였다. 황정민(맨 아래줄 왼쪽에서 셋째) 등 1994년부터 현재까지 12년간 출연한 배우 145명 중 100명 가까운 사람이 이날 몰려와 '지하철 1호선'의 끈끈함을 과시했다. 김성룡 기자

▶상시 레퍼토리화=록 뮤지컬 지하철1호선은 94년 5월 12일 학전 소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당시만 해도 연극이나 뮤지컬은 한 번 공연되면 폐기 처분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사회 하층민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스토리는 '코믹=장기 인기물'이란 기존 흥행 공식과도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뚝심으로 밀고 나갔다. 한 해 평균 10개월 이상씩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무모함'도 서슴지 않았고, 2002년부턴 아예 상시공연 시스템을 만들었다. 소극장 뮤지컬임에도 녹음 음악 아닌 라이브 밴드를 고집했다. '대한민국 소극장 뮤지컬의 자존심'이란 평가 속에 지금껏 모두 59만3000여 명의 관객이 지하철1호선에 합승했다.

▶원작보다 나은 번안극=지하철1호선은 국내 창작물이 아니다. 독일 뮤지컬 'Line1'을 번안한 것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공연은 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작의 정신만 남긴 채 철저히 '한국화'됐다. 옌볜 처녀가 등장하는가 하면 가짜 운동권 학생의 고뇌도 담겨 있다. 2000년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가 '저작권료 전액 면제'란 선물을 전해준 것도 지하철1호선의 독창성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투명한 제작 시스템=12년간 별다른 잡음 없이 올 수 있었는 데엔 돈 문제가 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연자와 연주자는 각자 일정 지분을 가진다. 매회 공연 시작 후 분장실엔 '오늘의 유료 관객 수, 초대 관객 수'가 칠판에 적힌다. 말일이면 그달의 팸플릿 판매 수입까지 포함된 모든 수입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총수입은 각 지분에 맞춰 나누어져 각자의 통장으로 입금된다.

▶스타의 산실=지하철1호선은 정차역마다 스타 배우를 쏟아냈다. 94년 초연 땐 재즈 뮤지션 나윤선이 주인공 선녀역을 맡았고, 설경구(안경).방은진(걸레) 등이 출연했다. 당시 극단 학전에서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던 설경구는 "뮤지컬임에도 '턴'이나 '덤블링'이 없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도전했다"고 말했다. 톱스타가 된 황정민은 95년부터 4년 넘게 활동했다. 2001년 합류한 조승우는 "막내인 터라 정수기 청소, 물걸레질 등 허드렛일은 몽땅 내 몫"이었단다. 이 밖에 배해선.서범석.문혜영.서지영.김경선.백민정 등 뮤지컬계에서 이름깨나 있는 배우치고 지하철1호선을 거치지 않은 배우는 거의 없을 정도다.

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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