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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리빙] 자식 키우는 재미 조카 사랑으로 만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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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보건대 김윤미 교수가 조카 조인하와 함께 서점을 찾아 새학기 참고서를 고르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합계 출산율 1.16명. 유래 없는 저출산 시대다. 소신껏 결혼 안 하고, 소신껏 아이 안 낳는 싱글족·딩크족이 그만큼 흔해졌다. 하지만 제 모습 닮은 자식 낳아 정을 쏟고 싶어하는 모성애·부성애는 생명체의 본능 아니던가. 자식 챙기듯 조카 챙기는 싱글족·딩크족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서울보건대 간호과 김윤미(45.미혼) 교수는 백화점에 갈 때마다 아동복 코너에 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생각나서다. 또 방학이면 직장일에 바쁜 언니 대신 조카를 데리고 전시회나 놀이동산을 찾는다. 조카가 종합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예약했다 데리고 가는 것도 이모 몫. "조카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이 보여 참 신기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김 교수는 10년 넘게 조카 이름으로 적금까지 붓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싱글족 이경미(38)씨는 2년 전 여동생이 아이를 낳은 뒤 퇴근길이 달라졌다. 오후 9시 가게 문을 닫은 뒤 20분 거리의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 잠실의 동생 집에 들르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이씨는 "처음엔 밤낮이 바뀐 조카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생을 도와주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요즘엔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 번번이 운전대를 돌리게 된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현석(35)씨는 "조카 지원도 사회 기여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딩크족이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혼 전부터 동갑내기 아내와 합의했다. "애 많은 집 보면 어떻게 저렇게 사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부부가 아이를 귀찮아하는 데다 맞벌이를 계속하면서 아이 키우기가 녹록지 않다는 현실이 그 이유였다. 대신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에게 삼촌 노릇 만큼은 제대로 하기로 했다. "지난 방학 때는 조카의 해외캠프 비용도 보태줬다"는 최씨. "경제적으로 여력이 되는 한 조카 대학등록금도 책임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진생 신경정신과 원장은 "단촐한 핵가족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나 외로운 싱글족.딩크족 모두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 대상과 경험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박 원장은 "부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물질적인 선물공세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딩크족인 회사원 김모(41)씨는 최근 올케와 조카 양육법에 대한 문제로 언쟁을 벌였다. "언니가 아이 반찬으로 늘 햄과 냉동 돈까스 등 인스턴트 음식을 올려놓는다"며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조카를 친엄마가 너무 무성의하게 돌보는 것 같아 화가 났다"는 김씨. 속이 상해 벼르고 벼르다 "언니, 자꾸 인스턴트 음식 먹이면 살만 쪄요"라고 한마디 했단다. 그러자 올케 역시 "부모가 안 사주는 게임기나 만화책 같은 거 선물하면서 아이 버릇 버려놓지 말라"며 평소 쌓인 감정을 풀어놓더라는 것. 김씨는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속이 뜨끔했다"며 "부모가 정한 양육 원칙을 깨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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